첫 번째 숲 이야기_다정함

나무의 지혜, 다정함, 내어주는 마음

by겨울꽃 김선혜

동쪽에서 옅은 빛이 번져 서쪽으로 해가 질 때까지, 세상의 시계는 숫자로 돌아가지만, 이곳은 바람의 숨소리로 아침을 열고 잎 떨군 나무 아래로 숨죽인 나뭇잎이 뒹굴 때 하루가 마무리된다. 숲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과는 달라서 나무가 한 뼘 자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는지 알 수 없다.


고요하고 깊은 시간을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


구름에 닿을 듯,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가지들을 바라본다. 가지 끝마다 얼마나 많은 생명들의 숨결이 스쳐 지나갔는지 셀 수 없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작은 햇살 조각을 포함한 수많은 삶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던 새들의 날갯짓, 잠시 쉬어가던 곤충들의 자리, 나무 그늘 아래로 지나가던 사람들의 몸짓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나무에 남겨진 흔적과 기억들은 단단한 나이테가 되었고 그 나이테는 하나씩 하나씩 늘어갔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만남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그 마음이 머물던 자리에 다정함도 자리 잡았다. 그리고, 진정한 다정함은 화려하고 미사여구가 가득한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가만히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깊고 넓은 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무는 나무의 그늘 아래로 들어오는 모든 생명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든, 이름 없는 작은 벌레든, 지나가는 나그네이든, 뜨거운 여름날에는 햇빛을 가려주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추운 겨울에는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되어준다. 거기에는 대가가 없다. 잠시 나무의 품을 내어줄 뿐이다.


그렇게, 수많은 존재들의 작은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동반자가 되어 주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언젠가 이 계절이 지나면 지금 머물고 있는 생명들도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갈 수 있겠지만,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는 온기로 남아, 새로이 찾아올 새로운 생명들과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추위와 비바람을 견뎌낸 자리는 그때그때 기워 입은 옷처럼 나무의 몸에 흔적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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