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라는 작품이다. 마트 진열장에 놓인 박스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워홀은 이를 예술 작품으로 제시했다.
마트에 진열된 브릴로 박스와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외관이 거의 동일한데, 하나는 일반 상품처럼 취급되고 다른 하나는 값비싼 예술 작품으로 추앙받고 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불러온 것일까?
우리는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을 봤을 때 ‘이게 무슨 예술이냐’라거나 ‘나도 그리겠다’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예술의 정의가 완전히 달라졌다면 어떨까? 미술의 개념이 바뀌었다면 우리의 이해 또한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단토가 말한 예술의 종말이라는 개념을 알면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미술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보고 예술 개념 자체가 변화했다고 주장한 철학자가 있다. 바로 아서 단토(Arthur C. Danto, 1924-2013)인데,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예술의 종말’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술의 종말’이라는 표현을 잘 해석해야 한다. 그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미술 작품의 제작과 생산이 더 이상 불가하다거나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예술 ‘개념’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미(美)라고 하는 예술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지 않게 된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단토에게 예술의 종말이란 “예술을 규정하는 선험적 조건들이 사라진 시대로서 그 어떤 것도 시각적인 작품이 될 수 있는” 해방의 시대이며, 따라서 이것은 예술의 ‘중지’가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확장’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단토의 중요한 주장이 나온다. 이제 예술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작품에 의미를 구현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는 ‘예술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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