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아트에서는 꼭 알아야 할 한국의 현대미술가에 대해 순차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미술관에서 최소 한 번 이상은 작품을 마주쳤을 서세옥(1929-2020) 화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서세옥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서도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서세옥의 미술사적 자리매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해방 후 제1세대 작가란 점이다. ‘해방’은 단순히 연대기적인 의미라기보다는 해방이라는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역사적 의미 또는 미술사적인 변환기에 깊게 연루된 작가라는 점을 의식하게 만든다. 작가 스스로도 이러한 자신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의식하면서 해방 후 1세대 작가로서의 면모를 뚜렷히 보여주는 작업을 해나갔다.
미술사에서 해방공간은 일본 미술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 독자의 미의식을 회복시키는 전기로서의 공간을 가리킨다. 이 시기에는 일본색을 벗어나려는 배격과 탈피의 몸부림이 미술계를 무겁게 지배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계 지상의 과제는 ‘탈인본풍’이었으며, 이 같은 열망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동양화에서 절실했다. 동양화 전체가 일본화풍은 아니었으나, 일부 전통 산수화파를 제외한 영역은 일본화의 양식적 감화나 기법의 원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 사실이다. 단순한 기법상의 감염이 아니라 일본적 감성과 미의식의 동화작용이 상당 기간 진척되었다는 점은 ‘탈일본색’이 강박관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헤아리게 만든다.
일본적 감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크게 두 가지의 길이 모색되었다. 그 중 하나가 ‘전통’에로의 회귀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적 회화’의 확립이었다. 전자는 안일한 방법이긴 하나 분명한 색채를 띤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는 당시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던 슬롯적 분위기와 상응되며 적극적인 모색으로 보이나, 다소 공허한 주장에 머물 위험이 없지는 않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각 미술대학에서는 구체적인 조형적 방법이 모색되었다. 1946년에 개설된 서울대학교 예술학부 미술과는 해방 후 우리 미술계가 열망한 민족적 양식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가장 주요한 실천의 장이 되었다. 해방 전까지는 이 땅에 아카데미로서의 미술학교가 존재하지 않았고, 1920년대 이후 미술수업은 일본 미술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이루어졌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아카데미가 설립되었을 때 많은 기대를 받은 것이 당연하다.
당시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동양화 교육을 담당한 교수는 김용준, 장우성, 노수현이었다. 이 가운데 김용준과 장우성은 일본화적 감각을 벗어난 양식으로서 동양화의 모색을 의식한 작가들이다. 이들의 의식과 젊은 작가 지망생들의 이념적 동조가 교육적 성과로 꽃피기 시작했다. 여기서 젊은 작가 지망생은 서세옥, 박세원, 박노수, 장운상, 권영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교수가 모색하고 교육시킨 방법은 이른바 ‘신문인화(新文人畵)’라고 할 수 있는 ‘묵법’ 중심의 화풍이었다. 복고적인 문인화의 양식적 답습이나 변주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입각하면서 간결한 선묘와 담채에 의한 담백한 공간처리를 중요시한 화풍이다. 주제는 현실적인 것이면서 방법은 문인화에서 볼 수 있는 고도의 간결과 절제의 정신적인 격조를 띤 것이었이다. 선묘의 중요성과 먹의 변화에 심미적인 조형성을 가미한 형태로 나타났다.
일본화가 진채를 사용하면서 선묘가 단순한 윤곽선으로 격하되었다고 본다면, 이들이 추구한 방법은 선묘 자체가 생동하는 기능을 띨 뿐 아니라 농담과 입체의 함축적인 표현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경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동양화 고유의 표현기법을 다시금 회복시키면서 그것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해 나갔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화단에 등장한 것은 1949년 1회 국전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49년은 이들 작가들이 아직 학생 신분일 때이다. 서세옥은 이때 <꽃장수>라는 작품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당시 국전은 기성화가들의 참여가 이루어질 때였는데, 재학생이 최고상을 획득했다는 것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꽃장수>는 소실되어 현재는 전해지지 않지만, 주제는 현실적이면서 방법은 간결 담백한 선묘와 채색에 의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서세옥은 2회 국전에서 <구월>을 출품했고, 3회 국전에서 <운월의 장>으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함으로써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두 차례에 걸쳐 동양화부의 최고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신인으로서 각광을 한몸에 받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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