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앞면이 나왔다. 살았다. 그런데 총을 든 남자는 동전을 한 번 더 던진다. 이번에는 운전사의 차례라고 한다.
〈다크 나이트〉에서 마로니가 하비 덴트를 마주한 장면이다. 마로니에게 나온 결과는 살려 주는 쪽이었다. 하지만 운전사를 향한 다음 던지기는 다른 결과를 낸다. 덴트는 안전벨트를 매고 운전사에게 총을 쏜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의 운명이 운전자와 따로 떨어져 있을 리 없다.
동전은 약속대로 던져졌다. 그 앞에서 마로니가 얻은 안전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장면에서 무서운 것은 확률만이 아니다. 누가 차례를 정하는가, 언제 게임을 끝내는가, 한 번 살아남은 사람에게 또 다른 결과를 들이댈 수 있는가. 동전에는 앞뒤가 있지만, 총을 든 사람의 규칙에는 끝이 없을 수 있다.
영화 초반의 덴트도 동전을 사용한다. 다만 그때의 동전은 양면이 같다. 상대가 결과를 두려워하는 동안, 덴트는 어떤 면이 나올지 이미 아는 셈이다. 범인을 심문하며 내미는 우연은 자신이 통제하는 연극에 가깝다.
레이첼을 잃고 얼굴에 상처를 입은 뒤에는 동전 한쪽도 훼손되어 있다. 같은 물건이 이제 삶과 죽음을 가르는 도구가 된다. 동전의 변화가 덴트의 변화와 나란히 놓이므로, 관객은 긴 설명 없이도 예전의 장난과 지금의 처벌 사이에 생긴 균열을 읽는다.
그런데 결과를 정말 우연에 맡긴다고 해서 덴트의 바카라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를 찾아가 총을 겨눌지, 어떤 결과를 죽음과 연결할지, 마로니 다음에 운전사를 심판할지는 여전히 그가 정한다. 그는 선택을 그만둔 사람이 아니라 선택의 일부만 작은 금속 조각에 맡긴 사람이다.
이 장면에서 공정함은 이상하게 축소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동전을 던질 수 있느냐는 문제만 남고, 왜 그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는 밀려난다. 관객도 잠시 그 축소된 질문에 끌려간다. 마로니가 옳으냐 그르냐보다 이번에는 어느 면이 나올지를 보게 된다.
그래서 운전사에게 돌아가는 두 번째 던지기가 날카롭다. 덴트가 동전의 결과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결과를 감싸는 상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규칙 하나를 지키는 사람이 전체 판을 공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카이지와 효도가 벌이는 제비뽑기는 겉모습만 보면 대단할 것이 없다. 휴지 상자와 종이로도 만들 수 있는 게임이다. 기계가 복잡해서 이해하지 못할 위험도 없고, 오랜 훈련이 필요한 운동도 아니다.
여기서는 목숨 대신, 그 단순한 판에 카이지의 손가락 네 개가 걸린다. 돈을 얻으려던 게임이 돈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신체의 일부를 요구하는 순간, 제비 한 장의 무게가 달라진다. 손을 상자 안에 넣는 행동 자체가 결과를 기다리는 몸과 결과로 잃을 몸을 겹쳐 보이게 한다.
이 대결을 단지 악당에게 붙잡힌 피해자의 상황으로만 보면 카이지 특유의 괴로움이 사라진다. 카이지는 자신이 판을 읽고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더 큰 승부에 들어간다. 효도가 요구하는 대가가 잔혹하다는 사실과, 카이지가 그 승부에 달려드는 욕망은 함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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