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온라인은 삼십만 원 넘게 싼데요.”
민재는 냉장고 모델명을 입력한 휴대전화를 직원에게 보여줬다.
신혼집을 계약하고 맞은 첫 주말이었다. 집값은 정해졌지만 집에 넣을 물건은 하나도 정하지 못했다.
직원은 견적서를 당겨왔다.
“단품은 그럴 수 있어요. 여러 품목 같이 하시면 카드 할인하고 포인트까지 다 보셔야 돼요.”
“근데 포인트는 현금은 아니잖아요.”
매장을 나오자 은서가 말했다.
“그냥 저 냉장고 하면 안 돼?”
"같은 건데 삼십만 원 더 줄 필요는 없잖아."
"설치 날짜 따로 맞추고 문제 생기면 판매처 연락하는 것도 생각해야지."
"삼십만 원이면 해볼 만하지."
은서는 더 따지지 않고 TV 쪽으로 걸었다.
85인치와 75인치의 가격 차이는 180만 원이었다.
민재는 가격표를 번갈아 봤다.
“10인치 커지는 데 백팔십을 더 내?”
“당신은 화면보다 가격을 더 오래 본다.”
민재는 두 화면을 번갈아 봤다.
85인치가 좋기는 했다. 같은 영상이 나오고 있는데도 영화관 화면처럼 보였다.
그래도 백팔십만 원이었다.
은서는 가격표 사진을 찍었다.
“이건 집 가서 생각해보자.”
매장을 한 군데 더 돌아보고 카페에 앉았다.
은서가 견적서를 펼치다가 물었다.
“식세기는 왜 목록에 없어?”
“둘이 사는데 꼭 있어야 돼?”
“그럼 설거지는 누가 해?”
“식기세척기 사는 문제랑 그건 다른 얘기잖아.”
“나한텐 같은 얘기인데.”
민재는 빈칸에 식기세척기 가격을 적었다.
“알았어. 넣자.”
"아까 삼십만 원은 그렇게 따지더니."
“필요한 걸 사는 거랑 같은 물건을 비싸게 사는 건 다르지.”
은서가 식기세척기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
휴대전화가 여러 번 진동했다.
회사 단체방이었다.
성호가 반도체 기사 하나를 올려놓았다.
— 하닉 또 가는 거 아니냐
— 이번 실적 컨센 또 올라왔다는데
정우가 바로 답했다.
— 너 지난번에도 그러다가 안 샀잖아
— 그래서 후회 중이라고
민재는 기사 링크를 눌렀다.
처음 보는 내용은 아니었다. HBM 수요가 예상보다 좋고 실적 전망이 계속 올라간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증권 앱을 열어봤다.
장 마감 후라 가격은 그대로였다.
SK하이닉스 평가손익 옆에 숫자가 떠 있었다.
+742,300원.
은서가 물었다.
“주식 봐?”
“응.”
“많이 올랐어?”
민재는 잠깐 화면을 보고 앱을 닫았다.
“칠십 정도.”
“오.”
은서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아까 TV 차이가 백팔십만 원이었지?”
“왜.”
“그냥. 생각보다 많이 벌었네.”
민재는 커피잔을 들었다.
아침부터 냉장고 삼십만 원을 아끼겠다고 매장을 돌아다녔다.
주식 계좌에서는 며칠 사이 그 두 배가 넘는 돈이 늘어 있었다.
그런데 둘을 같은 돈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냉장고는 사고 나면 끝이었다. 주식 계좌에 찍힌 수익은 아직 팔지도 않은 숫자였다.
둘을 굳이 같은 기준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은서가 말했다.
“그럼 신혼여행은 하와이?”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돈 벌었다며.”
“주식 올랐다고 여행지를 정해?”
“농담이지. 그래도 하와이 가고 싶긴 해.”
“가자.”
“진짜?”
“신혼여행인데 가고 싶은 데 가야지.”
“TV 백팔십만 원에는 그렇게 아까워하던 사람이.”
“그거랑 이것도 다르지.”
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봐. 또 다르대.”
월요일 아침, 성호는 민재에게 하이닉스를 지금 사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민재는 실적과 메모리 가격부터 보라고 했다. 자신은 왜 하이닉스를 샀는지 알고 들고 있는 거라고 덧붙였다.
점심은 회사 뒤 국수집에서 먹었다.
음식을 기다리다가 정우가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내 친구 마통 뚫어서 반도체 ETF 샀대.”
민재가 물었다.
“얼마나?”
“사천. 대출금리보다 많이 벌면 되는 거 아니야?”
민재는 물병을 내려놓았다.
“오를 때야 그렇지.”
“왜. 너도 대출 받아서 집 샀잖아.”
“집이랑 주식이 같냐.”
“돈 빌리는 건 똑같지.”
“집은 안정적이잖아. 주식은 내일 오를지 떨어질지도 모르고.”
성호가 말했다.
“그래도 확신 있으면 할 수도 있지.”
“확신 있는 사람이 어딨어.”
“너는 하이닉스 좋다며.”
“좋게 보는 거랑 무조건 오른다는 거랑 다르지.”
정우가 바로 끼어들었다.
“또 다르대.”
성호가 물었다.
“너라면 마통까지 뚫어서 안 해?”
“내 돈으로 하는 것도 충분한데 뭐 하러.”
국수가 나왔다.
정우가 민재에게 집 대출은 얼마나 받을 거냐고 물었다.
“둘이 갚을 수 있는 만큼.”
“주식도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면 되지 않아?”
민재는 국수를 한 젓가락 들었다.
“우리가 살 집이잖아.”
퇴근할 무렵 은서에게 전화가 왔다.
— 여기가 삼십 더 싸네. 설치비도 포함이고.
주말에 본 냉장고와 같은 모델이었다.
민재는 판매처와 배송 조건을 확인했다.
— 여기서 하자.
잠시 뒤 은서가 하와이 바다 사진도 보냈다.
— 여기는 조식 먹을 때 바다 보인대.
민재는 사진을 확대했다. 난간 앞에 작은 식탁과 의자 두 개가 있었다.
— 좋네. 여기 얼마야?
답을 기다리는 동안 회사 단체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성호였다.
— 나 결국 하닉 샀다
— 일단 500
정우가 바로 답했다.
— 아침에 쫄더니 결국 샀네ㅋㅋ
민재도 한마디 적었다.
— 처음부터 크게 넣지는 마.
성호가 엄지 이모티콘을 보냈다.
민재는 자기가 보낸 말을 한번 읽었다.
처음부터 크게 넣지는 마.
은서가 보낸 숙소 가격이 화면 위에 떴다.
생각했던 것보다 비쌌다.
— 바다 보이는 방은 하루 십오만 원 더래.
— 이틀만 할까?
민재는 의자 두 개가 놓인 사진을 다시 봤다.
— 이왕 가는 거 사흘 다 하자.
냉장고에서 아낀 삼십만 원보다 많았다.
신혼여행 숙소를 냉장고와 비교할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