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판 것만 사십

by서재원

토요일 오전, 은서는 약속 장소에 나오자마자 가방에서 줄자를 꺼냈다.


“진짜 가져왔네.”

“냉장고 안 들어가면 당신이 바카라임질 거야?”


이번 주 내내 은서는 냉장고장 폭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계약한 집을 다시 볼 수 있으면 가장 간단했지만 아직 잔금 전이었다. 중개사는 매도인 허락 없이 집을 다시 열 수 없다며 대신 같은 평형의 빈집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민재가 줄자 한쪽을 잡고 은서가 냉장고장 너비를 쟀다.

사진과 치수를 받은 매장 직원은 설치 가능 범위로 보인다고 답했다.


은서가 빈 주방을 돌아봤다.

“저기에 커피머신 놓으면 되겠다.”

“냉장고부터 들어가고.”

“아침에 당신 것도 내려줄게.”


민재는 줄자를 감아 은서에게 건넸다.

자기가 먼저 출근하는 날에는 뭘 해놓고 나가면 될지 잠깐 생각했다.


점심은 단지 상가의 칼국수집에서 먹었다.

은서는 앉자마자 가전 견적을 다시 꺼냈다.


“식세기도 그대로 넣는 거지?”

“응. 설거지 때문에 싸우는 것보다 싸잖아.”

“그 계산은 마음에 드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민재가 회사 단체방을 확인했다.

성호가 메시지를 올려놓았다.


— 나 500밖에 안 산 게 제일 후회됨

정우가 답했다.

— 지난주엔 500도 무섭다며

— 사람 마음이 원래 그런 거야


민재가 웃자 은서가 물었다.

“왜?”

“회사 애가 주식 샀는데 오르니까 더 못 산 게 아깝대.”

“당신도 그래?”

“그럴 때 있지.”

“그래서 더 사?”

“상황 봐서.”

“나는 오르면 팔고 싶을 것 같은데.”


은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다시 견적서를 봤다.

민재는 휴대전화를 내려놨다.


은서는 식기세척기 항목에 동그라미를 쳤다.

두 사람은 가전 설치 날짜를 정하고 점심을 먹었다.


며칠 뒤 아침, 성호가 민재 자리로 왔다.

“나 팔까?”

“벌써?”

“육 퍼 넘었어.”


성호가 계좌를 보여줬다.

오백만 원을 샀던 계좌에 삼십만 원 조금 넘는 수익이 찍혀 있었다.


“좋으면 더 들고 있어.”

“너는?”

“나도 아직 있어.”

“몇 퍼?”


민재가 증권 앱을 열었다.

몇 차례 나눠 샀던 금액을 합하면 천만 원 남짓이었다. 수익률은 7퍼센트를 조금 넘었다.

성호가 화면을 보고 말했다.


“나보다 많이 샀네.”

“원래 있던 거라니까.”

“이 정도면 안 팔아?”


민재는 잠깐 차트를 봤다.

최근 며칠 너무 빨리 오른 건 마음에 걸렸다.

보유 수량 가운데 절반을 선택했다.


“팔게?”

“일부만.”

“왜?”

“더 오르면 남은 거 들고 가고, 떨어지면 다시 보면 되지.”

주문은 금방 체결됐다.


성호가 물었다.

“얼마 벌었어?”

“판 것만 한 사십 정도.”

“그걸 왜 팔아. 더 갈 것 같은데.”

“그럼 너는 왜 나한테 팔까 물어봤냐.”

“오를 것 같은데 파는 거 보니까 아까워서.”

“주식이 원래 오를 땐 계속 오른다고 생각하지.”


팔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올라도 남은 물량이 있었고, 떨어지면 일부라도 먼저 판 셈이었다.


그날 저녁 은서와 가전 계약을 했다.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를 사고 TV는 75인치로 정했다.

직원이 최종 견적을 출력해왔다.

민재는 식기세척기까지 들어간 최종 금액을 확인하고 카드를 건넸다.


결제를 마치고 매장을 나오는데 은서가 물었다.

“아까 주식 팔았다며.”

“응.”

“얼마 벌었어?”

“한 사십 정도 확정했고, 남아 있는 것까지 하면 칠십 조금 넘고.”


은서가 잠깐 생각했다.

“식세기 값 정도네.”

“그러네.”

“주식이 식세기 사줬다.”

“내 돈으로 산 주식이거든.”

“그러니까 당신이 사준 거네.”


은서가 먼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민재도 뒤따라갔다.


냉장고 삼십만 원을 아끼려고 며칠을 찾아봤는데 주식에서는 그보다 큰 돈이 별일 없이 생겼다.

그래도 쉽게 번 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몇 달 전부터 들고 있었고, 실적도 찾아봤다. 주가가 떨어질 때도 기다렸다.

오늘 판 것도 운 좋게 오른 주식을 아무 생각 없이 판 것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매매내역을 다시 열었다.

매도 주문 옆에 체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계좌에 보이기만 하던 수익을 오늘은 자기 손으로 남겼다.


은서에게 메시지가 왔다.

— 첫날 저녁은 집에서 해 먹자.

— 식세기도 써봐야지.


민재가 답했다.

— 내가 할게. 메뉴 골라놔.


대화창을 닫고 남겨둔 주식을 봤다.

다 팔지 않은 것도 잘한 것 같았다.

오르면 더 벌 수 있었고, 내려오면 오늘 판 돈으로 다시 살 수 있었다.

민재는 매매내역을 한 번 더 보고 앱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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