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의 흥행에서 얻은 11월 엔터테미나 기획 아이디어
저는 요즘 11월 엔터테미나의 새로운 오프라인 강연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참석자 50명, 강사 4~5명 규모입니다. 가장 큰 고민은 모객입니다. 요즘은 좋은 강의를 온라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강연장까지 올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올여름 극장가의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집에서 영화를 보는 선택지가 크게 늘었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OTT가 늘면서 극장에 갈 이유가 줄었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The Odyssey)'를 보려는 관객은 아이맥스 상영관에 몰렸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화면과 어떤 소리로 볼지를 먼저 골랐습니다. 저도 어렵게 표를 구해 용산 아이맥스에서 '오디세이'를 보았습니다.
'오디세이'는 개봉 33일째인 9월 6일 누적 관객 1,002만 명을 넘었습니다. 9월 5일까지 아이맥스로 본 관객은 110만 2천여 명으로, 국내 개봉작 가운데 가장 많았습니다. 개봉 첫 주에는 국내 아이맥스관 27개가 46억 원을 벌었습니다. 이 영화를 상영한 2,455개 스크린 매출의 약 18%에 해당합니다.
큰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는 극장이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강점입니다. 아이맥스는 이 강점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상영 방식입니다. 여기에 그 경험을 필요로 하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오디세이'는 전체를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첫 작품입니다. CJ CGV도 이 영화의 흥행을 특별관 관람과 반복 관람 수요가 이끌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관객은 '아이맥스로 봐야 하는 이유'를 알고 표를 샀습니다. 형식의 강점은 내용이 그 강점을 필요로 할 때 효과를 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엔터테미나의 모객 고민을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강연이 원래 가진 강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더 크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처음에는 요즘 많이 권하는 참여형 강연 프로그램을 검토했습니다. 강사들이 한 사례를 함께 토론하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참석자끼리 테이블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계획은 체계적이었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제가 예전에 세미나를 찾아다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바카라을 읽고 그 저자의 강연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만남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다른 참석자와 교류하려고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카라으로 알게 된 사람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제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었습니다.
오래전 크래쉬(Crash)의 공연장에서 겪은 일도 떠올랐습니다. 크래쉬는 빠르고 공격적인 연주가 특징인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을 하는 국내 밴드입니다. 공연이 한창일 때 흥분한 관객 한 명이 무대에 올라 보컬 대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고, 오히려 끝까지 부르라고 부추기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관객들은 그 장면을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크래쉬의 노래를 들으러 간 것이지, 다른 관객의 노래를 들으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무언가를 기획할 때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찾아오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깊이 있는 강의를 들으며 그 사람의 판단을 이해하게 됩니다. 강의가 끝난 뒤에 뒤풀이 자리에서 내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다시 살리고 싶은 것은 이 두 경험이 이어지는 세미나입니다.
엔터테미나는 김형택 대표와 제가 시작한 세미나입니다. 강사가 즐거운 세미나를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강사가 즐거우면 그 수업을 듣는 수강생도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 몇 가지 규칙을 정했습니다.
첫 번째 규칙은 국내에서 처음 다루는 주제만 강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주최 측이 주제를 정해 강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사가 스스로 고른 새로운 주제를 발표하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규칙은 단 한 사람이 신청해도 세미나를 연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다루는 주제는 참가자가 적을 수 있어서, 이를 대비해 만든 규칙입니다. 실제로 수강생 한 명과 강사 두 명, 셋이서 뒤풀이를 간 적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 참가비는 9,900원으로 정했습니다. 1만 원을 받고 100원을 거슬러 주는 재미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익은 모두 뒤풀이 비용으로 썼습니다. 엔터테미나는 말 그대로 즐거운 세미나입니다.
이 규칙들은 강사를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수강생으로서 제가 찾던 구조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처음 다루는 주제'는 다른 곳에서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그런 강의를 들은 뒤에도 같은 공간에 남아, 강사에게 제 상황을 설명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경험이었습니다. '수익은 모두 뒤풀이로'는 그 대화가 이어질 자리를 행사의 일부로 약속한 것입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더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처음의 규칙을 더 충실하게 지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참석자가 실제로 따로 있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미국의 행사 운영 기업 프리먼(Freeman)은 2025년 보고서에서 참석자를 학습 중심, 네트워킹 중심, 상거래 중심으로 나누었습니다. 학습 중심 참석자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주제 전문가를 찾으려고 사람을 만납니다. 보고서는 이들에게 강연 후 전문가와 대화할 기회와 교류를 돕는 안내가 효과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컨퍼런스 참석자의 68%는 교류하는 이유로 업무나 조직에 활용할 새로운 배움을 꼽았습니다.
강연자끼리의 토론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행·행사 산업 매체 스킵트(Skift)는 올해 5월 여행업계 관계자 1,000명 이상을 조사했습니다. 응답자의 43%는 팀에 전할 만한 내용 없이 끝나는 패널 토론을 문제로 꼽았습니다. 저도 패널 토론이 끝나고 기억에 남는 내용이 적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강사의 설명을 충분히 듣는 데 시간을 쓰기로 했습니다.
먼저 강사에게 기존 강의안 대신 최근 현장에서 발견한 변화를 요청합니다. 생각을 수정하게 된 경험,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도 함께 요청합니다. 엔터테미나의 첫 번째 규칙을 지금에 맞게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공동 토론과 조별 활동에 쓰려던 시간은 강의와 질의응답에 돌립니다. 질문은 해당 강의 직후에 받습니다.
뒤풀이는 강사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섭외할 때 강사의 뒤풀이 참석과 머무는 시간을 미리 정합니다. 강사가 참석자 사이에 나누어 앉고, 진행자는 질문하고 싶은 사람을 강사에게 소개합니다. 한 번의 만남이 멘토 관계로 이어진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난번 조언을 실행해 본 사람이 결과를 가지고 다시 질문할 수 있다면, 관계는 거기서부터 이어집니다.
'오디세이' 관객은 어느 상영관에서 봐야 하는지 정하고 표를 샀습니다. 강연 홍보도 같은 정보를 주어야 합니다. 강사의 경력보다 이번에 처음 다루는 주제와 사례를 앞에 둡니다. 강사가 자기 채널에서 직접 초대하고, 강의 후에도 남아 질문을 듣겠다고 밝힙니다. 프리먼 조사에서도 참석자의 43%가 어떤 전문가나 인플루언서를 만날 수 있는지 미리 아는 것이 교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만남을 안내하는 방식은 SXSW 런던(SXSW London)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SXSW는 미국 오스틴에서 시작한 음악·영화·기술 축제이고, 런던 행사는 그 영국판입니다. 2026년 행사에서는 업계 전문가와 따로 20분 동안 만나는 세션을 안내하고, 예약이 축제 일주일 전에 열린다고 알렸습니다. 교육 분야 행사인 SXSW EDU는 15분 일대일 만남과 소규모 그룹 토론을 나누어 안내합니다. 참석자는 누구를, 얼마 동안,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지 미리 알 수 있습니다.
엔터테미나의 뒤풀이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안내하려고 합니다. 참석하는 강사, 시작과 종료 시간, 비용을 적습니다. 여러 참석자가 함께 대화하는 자리라는 점도 밝힙니다. '평생 멘토를 만나는 기회'처럼 관계의 결과까지 약속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강사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약속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참석자가 같은 이유로 오지는 않습니다. 프리먼 보고서의 네트워킹 중심 참석자는 오래가는 관계와 소속감을 원하고, 안건 없는 자유로운 교류를 선호합니다. 이번 강연은 특정 전문가의 생각을 듣고 그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참석자를 중심에 두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신청할 때는 무엇 때문에 참석을 결정했는지 묻겠습니다. 참석한 뒤에는 기대했던 강의와 대화를 실제로 경험했는지 묻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켰는지보다 이번에 약속한 것을 지켰는지가 중요합니다.
모객을 고민하면서 처음에는 무엇을 더할지부터 찾았습니다. '오디세이'는 극장이 오래 가진 강점을 더 크게 만들었고, 그 강점이 필요한 영화로 관객을 불렀습니다. 이 사례를 보고 나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엔터테미나가 원래 잘하던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한 강사와 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11월 강연은 그 규칙으로 돌아가는 데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세미나가 아니더라도 고객을 모으는 일을 고민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것을 더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전에 우리가 잘해 온 강점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강점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 고객이 찾아올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연휴 동안 이 생각들을 정리해 강사도 수강생도 즐거운 엔터테미나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P.S. 혹시라도 엔터테미나 기획에 좋은 아이디어가 계신 분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미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