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린 베리파이드가 보여준 탈진실 시대의 브랜드 역할
최근 ‘가짜뉴스와 탈진실 시대의 브랜딩’을 주제로 바카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카지노북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다시 다듬고, 새로운 사례를 찾아 빈 곳을 채우는 중입니다. 오늘 ‘떠오르다!’에서는 그 과정에서 발견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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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이라고 하면 대개 거짓말부터 떠올립니다. 조작된 통계, 맥락을 잘라낸 인용, 의도적으로 퍼뜨린 가짜 뉴스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보다 더 흔하면서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정보가 있습니다. 아무도 일부러 거짓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정보입니다. 누군가의 선의에서 시작되고, 체험담이 근거가 되며, 조회수가 쌓일수록 사실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의 탈진실도, 의도된 허위 정보도 아닙니다. 다만 체험과 조회수가 검증을 대신하는 정보 환경에서 특히 빠르게 증폭됩니다.
거짓말을 가려내는 방법은 그동안 많이 논의돼 왔습니다. 하지만 선의로 퍼지는 미확인 정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답이 없습니다.
150년이 넘은 브랜드 하나가 이 문제에 꽤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습니다. 말이 아니라 실행으로요.
유니레버(Unilever)에 따르면 온라인에는 바세린(Vaseline) 활용법을 다룬 게시물이 350만 건 넘게 존재합니다. 눈썹 결을 정돈하고, 염색약이 피부에 묻는 것을 막고, 달리기 전 피부 마찰을 줄이고, 향을 오래 남기는 방법까지 쓰임새도 제각각입니다.
이 정보들을 조작된 허위 정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상당수는 실제로 효과를 봤다고 믿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선의로 공유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경험을 뒷받침할 근거나 검증 방법이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알기 어렵고, 여러 사람의 경험과 해석이 보태지면서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퍼집니다.
그 과정에서 위험한 활용법도 섞여 들어갑니다. 바세린이 치아를 하얗게 만들거나 속눈썹을 자라게 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제품을 그대로 삼키는 활용법 같은 안전과 직결되는 오용도 함께 돌아다닙니다. 유용한 팁과 위험한 팁이 같은 해시태그 아래 나란히 놓여 있고, 소셜 게시물만으로는 소비자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 수많은 활용법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검증해 줄 주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규제기관은 제품의 안전과 표시·광고를 관리하지만 소셜에서 유행하는 생활 속 활용법까지 하나씩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나 소비자 매체가 개별 사안에 답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이 영역 전체를 체계적으로 맡는 곳은 없었습니다.
바세린이 들어온 곳은 바로 이 빈자리였습니다.
2025년 3월, 유니레버와 오길비 싱가포르(Ogilvy Singapore)가 이 공백에 들어왔습니다. 캠페인 이름은 ‘바세린 베리파이드(Vaseline Verified)’입니다. 유니레버에 따르면 소셜에서 널리 퍼진 활용법 수백 건을 검증 대상으로 올리고, 자사 R&D 연구원들이 차례로 시험했습니다. 효과가 확인된 활용법에는 인증 배지를 붙였고, 근거가 없거나 위험한 활용법은 공개적으로 반증했습니다.
판정 주체가 제품을 파는 회사라는 점은 소비자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뢰를 높입니다. 소비자는 제품을 만든 회사가 그 제품을 가장 잘 알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판정의 기준을 따져볼 필요가 생깁니다. 소비자가 크게 믿는 판정일수록 그 판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판정 능력, 증거의 질, 오류 수정 가능성입니다. 이 세 가지로 재면 제조사는 이 사안을 판정하기에 가장 유리한 주체 중 하나입니다. 특히 제품의 물성과 직접 관련된 활용법에서 그렇습니다. 배합을 아는 조직이 배합의 거동을 판정하기 때문입니다.
유니레버는 R&D 연구원뿐 아니라 법무·규제·분석측정과학·클레임 검증 팀이 함께 검토하는 체계를 갖췄습니다. 방수 메이크업을 10분 이상 말린 뒤 바세린으로 지워보고, 인공 피부 시료를 이용해 향수의 휘발량을 측정하고, 바이오스킨 플레이트로 피부 마찰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확인했습니다. 실험 과정의 일부도 콘텐츠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물론 제조사가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치아 미백은 치의학의 영역이고, 속눈썹 성장은 피부과학과 안과학의 영역입니다. 제품의 성분을 안다고 해서 장기적인 임상 효과와 위험까지 단독으로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건강과 안전이 걸린 주장은 해당 분야의 외부 전문가와 기존 연구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제조사만이 판정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 제품을 둘러싼 잘못된 정보가 퍼질 때 가장 먼저 확인하고 설명할 바카라임은 제조사에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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