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시대에 브랜드가 믿음을 얻는 법
칸 라이언즈 2026의 수상 결과를 훑어보다가 낯선 이름 앞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그해 광고제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캠페인의 주인공이 나이키도, 애플도 아닌 아웃도어 브랜드 컬럼비아 스포츠웨어였기 때문입니다.
칸 무대에 이름을 올린 적조차 없던 88년 역사의 브랜드가 최고 영예인 티타늄 상과 브랜드 체험 부문 대상을 포함해 모두 10개의 상을 쓸어 담았습니다. 무엇을 했기에 그랬을까 궁금해 사례를 파고들다가, 저는 이 캠페인이 상을 많이 받은 재미있는 광고 그 이상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도 광고를 믿지 않는 시대, 아니 아무도 무엇도 쉽게 믿지 않는 이 불신의 시대에 브랜드가 믿음을 얻는 법에 관한 영리한 답안지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은 2025년 12월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뉴욕타임스 지면에 낯선 공개편지 하나가 실렸습니다. 보낸 사람은 컬럼비아의 CEO 팀 보일(Tim Boyle), 받는 사람은 놀랍게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Flat Earthers)'이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들의 주장을 읽었고, 그림도 잘 봤다. 그렇게 지구가 평평하다고 확신한다면, 이제 직접 증명할 시간이다. 지구의 가장자리를 찾아 사진을 찍어 보내라. 그러면 회사가 가진 모든 것을 주겠다. 마네킹, 커피머신, 눈신발, 눈썰매, 사무실 화분, 심지어 구내식당에 있는 박제 비버까지, 전부 다."
캠페인의 이름은 '불가능한 탐험(Expedition Impossible)'. 컬럼비아가 10여 년 만에 브랜드의 방향을 새로 잡으며 내건 슬로건 '어떤 상황에도 견디도록 만들었다(Engineered for Whatever)'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캠페인이 왜 '믿음을 얻는 법'의 답안지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시대의 믿음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무너졌는지부터 되짚어야 합니다. 그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얼굴과 마주치게 됩니다. 바로 기업의 마케팅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흔히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내 감정과 믿음이 여론을 움직이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이미 탈진실에 대해서 저는 온라인카지노북으로 정리한 바가 있습니다. (올가을 바카라으로 출간되오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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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2016년 무렵이지만, 그 뿌리는 훨씬 깊습니다.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저서 《포스트트루스》에서 탈진실의 설계도를 그린 원조가 다름 아닌 1950년대 담배 회사들이었다고 지적합니다. 1953년, 흡연과 폐암의 관련성을 밝히는 연구가 나오자 담배 회사들은 과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신 훨씬 교묘한 길을 택했습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다',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말로 존재하지도 않는 의심을 만들어 퍼뜨린 것입니다.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가 《의혹을 팝니다》에서 추적했듯, 이 '의심 제조' 수법은 이후 수십 년간 진화론 부정, 기후변화 부정으로 그대로 복제되었습니다. 사실을 이길 수 없으면 사실을 흐리면 된다는 것, 그것이 탈진실의 첫 번째 교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본을 쓴 것은 음모론자가 아니라, 기업의 홍보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뿌려진 의심의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컬럼비아가 편지를 보낸 바로 그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은 인터넷이 만든 신종 유행이 아닙니다. 시작은 19세기 영국입니다. 새뮤얼 로보텀이라는 발명가가 곧게 뻗은 운하를 망원경으로 관찰한 뒤 '지구에는 곡률이 없다'라고 확신했고, 1865년 《지구는 둥글지 않다》라는 바카라을 펴냈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모임은 1956년 '국제 지구평면설 협회'로 이어졌지만, 20세기 내내 수천 명 규모의 변두리 모임에 머물다 사실상 소멸해 갔습니다.
죽어가던 이 믿음을 되살린 것은 2010년대 중반의 유튜브였습니다. 추천 알고리즘이 흩어져 있던 신봉자들을 서로 연결했고, 2017년에는 첫 국제 컨퍼런스까지 열렸습니다. 미국 텍사스테크대학의 심리학자 애슐리 랜드럼이 이 컨퍼런스 참가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는 의미심장합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유튜브를 통해 이 믿음에 입문했고, 그들은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부, 언론, 과학 기관 같은 제도를 깊이 불신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지구평면설은 무지의 산물이 아니라 불신의 산물입니다. 제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엉뚱한 것이라도 함께 믿을 무엇을 찾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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