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의 문턱 앞, 크래미에게 달려온 사람들
2026년 7월, 한성기업의 공식 자사몰 '한성마켓'에는 배송 지연 안내문이 올라왔습니다. 크래미, 소시지, 어묵이 줄줄이 품절되었고, 주문량은 평소의 수십 배로 불어났습니다. 2년간 브랜드 팬덤 구축을 자문해 온 기업의 일이라, 무슨 사고라도 난 건가 싶어 덜컥 걱정부터 앞섰죠.
다음 날 코스피 시장에서는 더 낯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4,200원대에서 조용히 횡보하던 이 회사의 주가가 장중 5,150원까지 치솟은 것입니다. 신제품이 나온 것도, 호실적 공시가 뜬 것도 아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고, 주식을 사고, 그 인증을 SNS에 올리는 일이 동시에 벌어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공중파 뉴스를 통해 이야기의 전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말을 듣고 나니 지난 2년간의 자문 경험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동시에 이번 사건 뒤에 숨어 있던 배경들도 하나둘 떠올랐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돈쭐'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선한 가게에 주문을 몰아주는 소비 운동은 여러 번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대중이 제품 구매를 넘어 자본시장의 규칙까지 읽어냈습니다. 이달 1일부터 코스피 상장 유지를 위한 시가총액 기준이 300억 원으로 높아졌고, 내년 1월에는 500억 원으로 한 번 더 올라갑니다. 한성기업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한때 261억 원까지 밀리며 상장폐지 우려선 아래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크래미를 사자"에서 멈추지 않고 "시총 300억을 지키자"로 나아갔습니다. 돈쭐이 정리매매의 문턱 앞에서 기업을 끌어올린, 제가 아는 한 국내 첫 번째 사례입니다.
이 현상을 촉발한 것은 스레드를 중심으로 퍼진 한 편의 미담이었습니다. 크래미를 만드는 이 수산식품 기업이 유엔 참전용사를 위한 '영웅을 위한 음악회'를 25회째 조용히 후원해 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에 "국산 원재료만 쓰는 토종 기업"이라는 서사가 얹히면서, '애국 기업이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는 알고리즘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확산된 소문의 절반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은 것은 언론도, 팩트체커도 아닌 한성기업 자신이었습니다.
회사가 내놓은 입장문은 감사 인사로 시작하지만, 그 본질은 정정문에 가깝습니다. 국산 원료만 쓴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국산을 우선하되 품질과 가격을 따져 여러 나라의 원재료를 함께 선별해 쓰고 있다고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음악회 후원에 대해서도 자신들만의 공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행사는 호국문화진흥위원회가 개최하고 뜻있는 여러 기업의 후원과 음악인들의 봉사로 이어져 온 것이니, "감사한 칭찬의 말씀은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주가가 오르고 주문이 폭주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순풍 앞에서 이 회사는 돛을 더 펴는 대신 과찬의 바람을 스스로 뺐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열기가 식기는커녕 신뢰가 배가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해명하는 회사라면 수입 원료의 품질 관리도 믿을 수 있겠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다음 날 주가는 오히려 더 올랐습니다. 탈진실의 시대에 브랜드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오해를 스스로 바로잡는 것, 그것보다 확실한 신뢰의 증명은 없습니다.
물론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상장사가 한둘이 아닌데, 왜 하필 한성기업이었을까요. 참전용사 미담 하나가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미담은 불씨였고, 불씨가 옮겨 붙을 마른 장작, 즉 신뢰의 자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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