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른다는 것, 관계가 있었다는 가장 작은 증거
지난 6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습니다.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의 오래된 문방구, '미도문방구'의 유리창에 붙은 손편지였습니다. 15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70대 부부가 상가 계약이 만료되면서 문을 닫게 되었고, 마지막 인사를 손글씨로 남긴 것이죠.
첫 번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고객님!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비록 문은 닫지만 여러분의 멋진 앞날을 멀리서 응원할게요!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사랑합니다. ♡♡♡"
여기까지만 보면, 정중하고 따뜻한 폐업 인사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가 수많은 커뮤니티로 퍼져나가고, 언론이 받아쓰고, 어른들의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 것은 두 번째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참 좋아했던 친구들. 민찬이, 서원이, 준서, 성원이, 정한이, 정환이, 예준이, 민서, 태준이, 태현이, 창호, 보희, 윤진이, 희선이, 윤서, 경환이, 은솔이, 현택이, 정원이, 도훈이, 민주, 윤진이, 도경이, 건희, 유찬이, 잘생긴 서진이. 그리고 더 많은 친구들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서 이름들이 가물가물하구나. 앞으로 아니 오랜 시간 너희들이 많이 그리울 거야! 항상 응원 많이 할 테니 파이팅! 사랑합니다."
단골 아이들 20여 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 있습니다. 저는 이 두 번째 편지에서 한참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브랜드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진정성'이라는 것의 실체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두 편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대비가 보입니다.
첫 번째 편지는 사실 어느 매장 유리창에 붙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글입니다. "사랑하는 고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앞날을 응원합니다". 진심이 담겨 있지만, 형식은 우리가 아는 '폐업 안내문'의 문법입니다. 수신인이 '수많은 고객님'이라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편지의 수신인은 집단이 아닙니다. 민찬이고, 서원이고, 준서 등입니다. 그 순간 이 글은 안내문이 아니라 편지가 됩니다. 안내문은 모두에게 쓰지만, 편지는 한 사람에게 씁니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 유리창 앞을 지나던 '고객 중 한 명'은 '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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