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의 선전포고
"누구시죠?"
현 원장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며 말했다.
"아! 계셨군요?원장님. 저 윤 지수라고 합니다."
또각 또각 가까워지는 구두 소리와 함께 말을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밝은 LED아래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윤 지수 ! '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온 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잊혀질 만하면 나타나는 그 이름.
'인연일까? 악연일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인연은 아닌 건 확실했다.
"네? 누구시죠?"
현 원장은 진짜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님 기억에 없는 척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 강현 오빠가 제 얘기 안 했나 봐요?저 강현오빠 여자 친구였어요! 그리고 지금은 옆에 새롭게 오픈한 최고 지수학원 공동 대표이기도 하고요!"
지수는 날씬한 몸매에, 온 몸을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짙은 화장때문인지 얼굴도 차갑게 보였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누가 봐도 날씬한 몸매에 명품으로 온 몸을 감싸고, 화장도 짙게 했으니 예쁜 젊은 여자의 모습이라고 보였을 것이다. 지수도 그걸 노리고 꾸미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도리어 안쓰럽고 추해 보이기 까지 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런데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현 원장이 나를 쳐다보지 않은 건 내가 지수와 대면했을 때 불편해 할 것을 알기에 배려해준 행동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 입자이 너무 어중간했다. 안 나서자니 무슨 잘 못을 한 사람처럼 숨어 있는 듯이 보였고, 나서자니 얘기가 더 꼬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수야! 여긴 무슨 일이야! 그리고 너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알아?"
결국 나는 나서는 쪽을 택했다. 감정이 격앙 되었지만, 다행히 폭발하진 않았다.
"어머! 강현 오빠도 있었네~ 잘 지냈어? "
지금 앞에 서있는 사람은 예전에 알던 지수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대한 죄바카라감이나 아니 미안한 감정조차도 찾아 볼 수없었다.
"잘 지냈냐니? 너 지금 그게 이 상황에서 나한테 할 말이라고 생각해?"
지수의 태도에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해보니 또 그렇긴 하네. 하지만 난 진짜 궁금해서 물어 본거야. 오빤 안 궁금하겠지만, 난 잘 못 지냈거든!"
하얗게 변함이 없던 지수의 얼굴이 약하게나마 떨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지금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자기는 잘 못 지났다라니...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 저희 원을 방문하셨다는 건, 저한테 용무가 있으셔서 오신 거 아닌가요?지수씨!"
잠자꼬 듣고 있던 현 원장이 끼어들었다.
"아..제가 갑자기 강현오빠를 보자 옛 생각이나서 깜빡했네요.그럼 본론을 말씀드리죠."
"네.말씀하세요!"
두 사람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냉정하고 차분해 보였다.
"저 이제부터 작심하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강학원 황금원을 흔들어 볼 생각입니다."
지수는 표정하나 변하거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걸 알려주는 이유는 뭐죠? 그냥 흔들어도 됐을텐데요!"
현 원장 역시 숨소리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우리를 둘러싼 공간을 지배했다.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언니~일종의 선전포고에요~"
지수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로운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미소를...
"왜? 최 강 따위와 손을 잡았는지 궁금하네요. 지수씨라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줄 알았는데!"
현 원장 역시 놀라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 처럼...오히려 현 원장의 입에서 최 강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지수가 미세하게 눈쌀을 찌푸렸다.
"어머! 최 혁이라는 이름이 안 나오고 최 강이라는 이름이 먼저 나오는 걸 보니 알 만큼은 아시는 모양이네요. 역시 현 총장님 빽이라 다르시군요. 아무튼 상관없어요. 어차피 곧 알게 되실거였으니까요. 자~전 제가 전할말은 다 전했으니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그땐 강현 오빠 우리 못 한 얘기도 더 할 수 있기를 바래요~"
자기 할 말을 마친 지수는 눈을 찡긋해보이고는 또각 또각 차가운 타일바닥에 날카로운 구두 굽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딸랑 딸랑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서야 제 정신이 돌아 오는 것 같았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공기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뭐지? 갑자기 찾아와서는 선전포고를 하고 갔어! 정말 어이없네! 괜찮아? 지혜야!"
나도 나였지만 놀랐을 지혜를 챙겨야 했다.
"응! 난 괜찮인! 넌 괜찮아? 백 강현?"
아닌 척 티를 내진 않았지만 지혜도 이제서야 숨을 내 쉬었다.
"응! 갑자기 나타나 달라진 지수의 태도가 당황스럽고 안쓰럽긴 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잖아?"
며칠 전 이었다. 뜬금없이 찬영한테서 아침일찍 전화가 왔었다.
"여보세요? 어쩐 일이야?"
누워있다 전화를 받았다.
"야~~인마 이거! 안 변하네! 행님이 전화 했으마 인마! 빠딱 일어 나까지도 무릎 꿇고
두 손 으로 아이고~행님.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제가 자주 연락드리지 못 해 죄송합니다. 이래야지?"
정작 변하지 않는 건 찬영이었다. 정말 변함없는 래퍼토리였다.
"됐고~난 괜찮으니 말해봐. 니 죄를 다 사했으니...."
"문디! 말 귀 몬 알아 듣는 것도 똑~~같네! 요즘 재미있냐? 통 연락도 음꼬!"
"그냥 저냥, 원래 학원 일이란 게 그렇지. 뭐! 왜 또 주식 대박 났냐? 아님 심심해서 알바라도 뛰어보게? 돈 많은 백수님께서?"
"참! 말도 이뿌게 한다. 그기 아이고 인마! 니 진짜 벨일 음나?"
말투에서 찬영이 답지않게 걱정이 묻어났다.
"와? 먼일인데? "
나도 모르게 찬영이랑 통화할 때면 나도 사투리가 심해졌다.
"니 수영이 알제? 와...그 이따아이가? 지수랑 동기..지수가 가랑 억수로 친했다 아이가..??"
지수이야기가 나오자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가가 와?"
뒷 이야기가 빨리 듣고 싶었다.
"니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 아이고 인마야 나 가가 지수 만났는데 지수 미국에서 돌아와가 여기 최강학원이랑 손 잡고 너거 학원있는 동네에 학원 차렸다 캤단다. 지가 그 쪽 학원 다 먹어버릴거라고...근데...."
여기까지 말 하고는 찬영이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근데, 뭐?"
"근데 안인나? 수영이가 카던데 지수 가 억수로 마이 변했다 카데...니 한테 약간 복수심 같은 거도 있는 거 같다 카더라...니 갠찮나?"
찬영이 이야기를 듣자 역시 우연히 최 혁이랑 지수가 이루어진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렇게 된거였구나! "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머라꼬? 니 알고 있었나?"
찬영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그건 아니고? 근데 니는 우째이래 소상히 아노?"
"아....수영이가...."
말을 더듬는 찬영이었다.
"수영이가 뭐?"
난 이때다 싶어 다그치기 시작했다.
"우연히...."
"우연히 뭐?"
"어제....전화가...와가....."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찬영이었다.
"진짜 우연히 였나?"
뭔가 냄새가 났다. 난 찬영이 말투만 봐도 알았다.
"아이고..그래 인마! 내 수영이랑 사긴다. 된나? 아이고 거진말도 몬 해무껜네...."
그제서야 진실을 토로하는 찬영이었다. 찬영이는 거짓말 할 때면 뭔가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말소리가 작아지고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야...인마 이거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니 완전 성공했네! 수영이가 완전 큰 일 했네~"
연애도 못 하고 혼자서 방구석에서 무협지나 읽고 있어서 늘 맘이 써였었는데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히히 그러게~내가 늘그막에 먼 복인지 모르겄다. "
찬영이는 정말 투명한 친구였다. 좋은 감정을 속이지 못 하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좋긴 정말 좋은 모양이었다.
"야~인마 이거 수영이 얘기 나오니 완전 딴 사람이 뎃뿟네? 그리 좋나?"
수영이 얘기만 나와도 환한 미소를 짓는 찬영이 얼굴이 떠올라 더 흐뭇했다.
"히 그러게. 아! 지금 수영이 전화 온다. 끊어"
"야......."
인사도 못 할 만큼 빠져있는 모양이었다.
'ㅎ 좋을 때다!정말 잘 됐네..수영이라면!'
찬영이와 수영이!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수영이의 환한 미소와 지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왠지모르게 슬펐다.
'지수야! 어쩌다 이렇게 된거야?도대체 그 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