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인사를 하면서 이 질문을 이렇게 많이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질문은 때로는 따스하게, 때로는 아프게 느껴졌다. 퇴직 결정을 하기까지 나와 남편은 많은 강을 함께 건너왔기 때문이다.
한강대교 견우카페에서 그는 나에게 진지한 만남을 가지자고 말했었다. 지금은 견우카페의 '기역'만 꺼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발을 빼곤 하지만 나는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고 있다. 결혼 13년 차, 그가 밉게 생각되는 일이 생겨도 결혼 전제 만남을 시작하던 그때의 마음을 종종 꺼내서, 그 자리에 그 형태 그대로 잘 있는지를 확인하곤 한다. 한 번 먹은 마음은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는 내가 유학을 떠날 때도 회사에 휴직을 하고 따라왔었다. 물론 영어공부를 할 마음이 있어서 나와 같은 나라로 떠난 걸 수도 있겠지만, 99.9% 내가 떠나기 때문에 함께 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뻑적지근한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은 현실이었다. 첫 아이가 바로 태어났고, 곧이어 시어머니의 치매 발병 소식을 들었다. 그리곤 아기가 되어버린 어머님을 내 막내 아이로 받아들이기까지 몇 년이 필요했다. 나와 남편은 서로 달달하게 사랑하던 사이에서, 현실의 무게를 함께 나눠지는 사이로 바뀌어갔다. 연인에서 현실 부부로 안착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무사했다고 평할 수 있겠지만, 당시엔 무사하지 못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