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바카라상 앞에 앉았다
이게 다 뭐더라.
분명 외웠는데 다시 리셋된 느낌이다.
외워도 남지 않는다는 건 뭘까.
너무 오래 지우며 살아서 그런 걸까.
아침마다 차를 어디에 세웠는지 몰라 잠깐 멈춰 서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방금 한 말도 잊는다.
어제도 그랬다.
관계기관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부서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실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물론 격려의 인사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생각했다.
‘제가 얼마나 잘 잊는 사람인지 아시면 놀라실까.’
첫인사 자리에서 상대 기관 직원이 명함과 함께 맛동산 과자를 내밀었다.
이름이 동산이라 연결해서 기억하라는 뜻이란다.
그런 센스가 재밌었다.
나도 지지 않겠다는 듯
안경테와 블라우스를 같은 파란색으로 맞춰 입고 갔다.
일대일 무승부쯤 된다고 혼자 생각했다.
뭐든 놀이처럼 하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늘
내가 올라야 할 어떤 경지 앞에서 먼저 겁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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