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눈금표
새벽 1부 예배는 여섯 시 오십 분에 시작했다.
예배를 마치고 수영장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 안에서 20분 동안 원어민 영어수업을 듣고, 아홉 시 자유수영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집 안팎을 청소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해 버렸다. 오는 길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카스테라도 샀다.
하나씩 적어놓고 보니 제법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시작할 때마다 마음은 늘 같은 자리에서 머뭇거린다.
갈까, 말까.
할까, 말까.
살까, 말까.
전날부터 계획해 둔 일인데 막상 때가 되면 눕는 쪽이 더 쉽다. 영어공부도 안 하는 편이 편하고, 수영도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럴 때 가끔 생각한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면 나는 더 잘 살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주머니는 지금보다 가벼울 테고 실력도, 경륜도 부족할 것이다. 이해의 폭도 좁고 자신감도 없어서 남의 눈치를 보며 따라가다가 속으로는 원망했을 것이다.
젊음은 부럽지만, 그때의 나까지 다시 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2018년에 돌아가셨다.
소비하는 것을 싫어하고 악착같이 아끼던 분이었다. 젊은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지금 다시 아버지를 만난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지금도, 아버지와 닮은 남편의 모습을 만나면 나는 다시 옛날의 딸이 된다.
오늘 저녁에도 그랬다.
남편이 좋아하는 명태젓갈을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혼자 점심 드실 때 꺼내서 해동해서 드세요.”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됐어. 매번 먹던 것만 먹어? 이것저것 먹어야지.”
마음이 탁 닫혔다.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당신이 좋아해서 산 건데.
그때 또야가 금세 달려왔다.
‘봐. 또 괜히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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