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는 시차가 있다
내일은 남편과 춘천에 갑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이다.
며칠 전부터 남편에게 말했다.
“내 친구는 금요일부터 휴가 내고 아들, 딸, 남편 넷이 베트남 갔대요. 우리도 어디 가요.”
남편은 가만히 들었다.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걸로 지나간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낮에 문자가 왔다.
내일 춘천에 가자.
아.
춘천.
나는 금세 한 사람을 떠올렸다.
남편의 제자가 사는 곳이다.
⸻
남편은 스물네 살에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두 번째 부임지에서 만난 제자가 있다.
34년 전의 일이다.
세월이 흘러 선생과 제자는 서로의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12년 전 우연히 다시 만났다.
조금 특별한 방식이었다.
남편이 교회 강단에 섰다.
간증자로 나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자랑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감추고 싶은 이야기였다.
자신의 부끄러움과 잘못을 꺼내놓는 회개의 고백이었다.
그 영상이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갔다.
그리고 댓글 하나가 달렸다.
제자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의 고백을 듣고도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전히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
오늘 그 이야기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머문다.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알고 난 뒤에도 그 사람을 존경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요즘의 나는 그런 이야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나에게도 지우고 싶은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퇴직까지 800여 일을 남겨놓고 이상하게 지나간 사람들이 자주 떠오른다.
잘했던 일보다 잘못했던 말이 먼저 온다.
⸻
예전의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말대꾸조차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퇴직을 앞둔 선배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럴 거면 명예퇴직하시지.
결정을 빨리 내리지 못하는 상사를 보면서도 속으로 말했다.
그렇게 할 거면 내려오시지.
내가 그 자리에 갈 것도 아니면서 판단은 빨랐다.
사람에게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 사정이 몸으로 번역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조금 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
글을 오래 읽으면 피로가 몰려온다.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 날도 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으면 이해하는 속도도 달라질 수 있다.
결정 하나를 내리는 데도 이전보다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철렁한다.
아, 그때 그분도 그랬을까.
⸻
또야가 끼어든다.
‘이제 와서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그때는 이미 지나갔잖아.’
맞다.
지나갔다.
그래서 더 아프다.
시간을 되돌려 그 사람 앞에 다시 설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에는 시차가 있다.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던 말이 십 년 뒤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나서야 보인다.
사건은 오래전에 끝났는데 이해는 이제 도착한다.
⸻
한 번은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를 평가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가 내놓은 연구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내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평가자는 그것을 말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내가 말한 방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 사람이 수모를 느낄 만큼 몰아붙인다고 연구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잊었다.
십 년쯤 지나 어느 날 갑자기 그 장면이 돌아왔다.
이상한 일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내가 불러오지도 않았는데 자기 발로 찾아온다.
그제야 부끄러웠다.
결국 그 박사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사과했다.
너무 늦은 사과였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
요즘 이런 조각난 기억들이 하나씩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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