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명상지도자과정 20주의 기록(8/20)
마음이 건강하고 조화로운 사람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은 텅 빈 마음이 아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은 사랑과 자비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자비롭고,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는 또한 "당신이 자비심과 친절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저절로 내면의 문이 열리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8주 차의 강의 주제는 자애명상이었다. 수용전념치료(ACT : Accept and Commitment Theraphy)와 자기자비 이론을 융합한 임상 치료사 겸 저술가인 안드레아스 크누프(Andreas Knuf)의 프로그램과 불교의 자애(Loving-Kindness) 명상과 서양 심리학을 결합한 크리스틴 네프와 크리스토퍼 거머의 마음챙김 자기자비 프로그램인 MSC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온라인카지노 글은 그들의 저서인『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게』,『나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안드레아스 크누프의『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게』의 원제는 Sei nicht so hart zu dir selbst: Selbstmitgefühl in guten und in miesen Zeiten (너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 마라: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자기자비하기)이다.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그대로 품어라",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수용하라"는 이 바카라의 메시지는 수용전념치료(ACT)의 핵심 프로세스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에게 친절해진다는 것'을 자기애, 자기방종, 자기합리화의 의미로 오해한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면서도 지금의 모습을 받아들이면, 나약하고 발전을 회피하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받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친절'은 삶의 어두운 면, 이를테면 인생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내게 주어진 통제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비난을 이겨내는 힘이다.
아주 짧으며 지극히 불확실한 인간의 인생. 불교에서 Dukkha는 아픔, 슬픔, 고통, 참기 어려운 불편함을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바라던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두카는 우리 인생에서 수없이 일어난다. 우리가 인생에서 벌어질 온갖 부정적인 상황을 모두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사람은 이중의 고통을 겪는 반면,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은 더 쉽게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와 결국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 인생에는 슬픈 일도 있는 것이다. 다만 슬픔은 어느 날 찾아왔다가 다시 사라지곤 한다는 것을 알려주면 된다. 슬픔이 오자마자 서둘러 슬픔을 떨쳐버리려고 하는 사람은, 그 슬픔이 저절로 사라지는 경험을 절대 할 수 없다. 그런 이들은 고통이나 불쾌한 감정 앞에서 엄청난 불안을 느끼게 된다. 불안감과 불쾌함에 맞서 싸워본 사람만이, 그것을 견디면 다시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와도 스스로 대처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인생을 휘두르려 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 이를 안드레아스 크누프는 '상습적인 불평꾼'이라고 명명했다. 이 교묘한 불평꾼은 특히 어린 아이나 청소년이 저지르는 약간의 잘못에 대해 아주 적극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한다. 자녀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거나 비난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유난히 극성맞은 불평꾼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
이 독재자의 목소리는 두 가지 직접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하나는 우리가 그 요구사항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끼고, 양심의 가바카라을 받으며, 그로 인해 자신을 비난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요구를 따르기 위해 내가 원하는 삶, 행복한 일상을 사는 것이 아닌 머리로 짜낸 이상을 좇는다는 것이다. 이 목소리는 우리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요구하고 다그친 끝에 우리가 스스로를 해치도록 만든다. 자신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심한 경우 몸을 해치기도 하지만, 정작 불평꾼은 그 결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휴가도 충분히 쓸 수 있고, 업무 강도가 높지 않다고 해서 번아웃증후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번아웃증후군 유발자는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상습적인 불평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전문용어로는 탈융합 Defusion이라고 한다. 생각과의 융합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어차피 너는 못해"라고 불평꾼이 말할 때, 이렇게 반문해라. "못한다는 걸 어떻게 알아? 네가 예언자라도 돼?"하고. 생각은 생각일 뿐, 예언이 아니다. 의외로 쉽고 간단하게 불평꾼의 목소리를 객관화하여 마주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이름 붙이기'가 있다. 불평꾼의 불만이 떠오르면 '멍청한 수다꾼'이라 이름 붙여보라.
교묘하게 숨어 삶을 힘들게 하는 상습적인 불평꾼 수준이 아니라, 자기비난이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이미 정체성과 합쳐져 있는 경우에는 자기 비난과 최소한의 거리조차 확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결국 해내지 못했어', '실패하고 말았어', '일이 엉망이 된 것은 내 바카라임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를 비난하기 시작한 셈이다. 나에게 친절한 사람은 이러한 비난을 덜하며, 나쁜 느낌을 견디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내가 방금 느끼고 경험한 것은 나만이 겪는 실패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극히 정상적인 인간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수치와 죄의식은 '슬롯적 감정'으로서 집단의 소속을 보장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 인간은 수십만 년이 넘도록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했고, 집단과의 유대를 통해 생존해 왔다. 수치감과 죄의식은 무리에서 내쳐질 위험이 발생할 때 나타난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물음이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하지만 과거 수천 년 전에는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오늘날 수치심은 대부분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내면의 상습적 불평꾼이 수치심을 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는 과정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가깝게 지내다 보면 단점이 보일 수밖에 없는데, 평생을 함께해 온 나 자신이라면 어떻겠는가. 나는 내 안의 가식적인 모습, 마음에 들지 않는 특징, 나쁜 마음까지 모두 알고 있다.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일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서서히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 스스로에 대한 친절이 무엇보다 힘든 시기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엇이 내게 도움이 되고 도움이 되지 않는지를 판별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친절은 언젠가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영원히 나와 함께하는 것이다. 자기 친절을 목표로 인식하게 되면, 성공여부를 판단하게 되고, 또다시 자신을 비난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제대로 된 친절은 '나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나를 이해해 줘'가 아니라 그저 타인만큼만 상냥하게, '나도 남들만큼 힘들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내가 안쓰럽다. 그러니까 나라도 나를 이해해 주자'라며 스스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것이다. 친절하게 대하기는 내면의 목소리에 무조건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다 믿어주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속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만 그들의 말을 모두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굳이 불친절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 친절하게 대하되 단지 그와 대화를 할 생각이 없고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현을 분명하게 하라. 부정적 감정을 밀어내기만 하면, 활기 없는 에너지 또는 인위적인고 가식적인 친절 에너지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평가하지 않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자신을 비난하는 그 태도를 다시 비난하지 않을 때, 타인에 대한 비난뿐만 아니라 자기비난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난은 공허하고 잠잠해진다. 우리가 무언가를 거부하거나 떨쳐버리려고 하면 오히려 그것이 더 단단히 옥죄어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뭔가를 통제하려고 할 때는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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