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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하치고 ①

라멘 한 그릇에 예약 수수료를 500엔이나 낸 이유

by기묘한
도쿄에서 밥 먹으며 공부합니다 — 3박 4일의 여행에서 발견한, 맛있는 한 끼 뒤의 비즈니스 이야기입니다.


토요일 아침 9시, 아내와 나란히 앉아 휴대폰 화면을 노려봅니다. 라멘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였죠.


일본 여행을 가면 꼭 먹어야 할 음식,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라멘 아닐까요?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에, 가게마다 고유한 매력을 뽐내는 메뉴까지. 작년 첫 도쿄 여행 때 아내는 하루 한 끼는 꼭 라멘을 먹고 싶다고 할 정도였는데요.


그런데 그때 얻은 깨달음은 라멘이 다 같은 라멘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아내의 바람대로 매일은 아니었지만, 여행 내내 가장 자주 먹은 메뉴가 라멘이었는데요. 가게마다 맛의 편차가 정말 컸습니다. 아무 가게나 들른 것도 아니었어요. 나름 고심해서 고른, 꽤 유명한 맛집들뿐이었는데도 말이죠.


아마 첫 번째 가게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탓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첫 여행에서 잡았던 숙소는 도쿄 중심부에서 살짝 떨어진 오츠카에 있었는데요. 숙소 근처 맛집을 찾아보다 발견한 곳이 나키류였습니다. 알고 보니 2017년에 무려 라멘으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곳이었죠. 거기서 느꼈습니다. 라멘도 특별할 수 있구나, 격이 다를 수 있구나 하고요.


그래서 다시 찾은 이번 도쿄 여행에서 가장 먼저 고른 식당은 긴자 하치고였습니다. 도착 후 첫 끼니부터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껴 보고 싶었거든요. 여러모로 나키류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었고, 역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이력이 있었죠. 게다가 일본 최대 맛집 리뷰 사이트인 타베로그에서 방문 당시 도쿄 라멘집 순위 5위, 평점 3.93점으로, 10위에 3.87점이던 나키류보다도 높았습니다. 첫 식사이자 이번 여행 최고의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가게로 향했습니다.




가게에 들어서는 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긴자 하치고 예약은 오후 3시 반. 점심이라기엔 다소 늦은 시간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건, 그날 아침 9시 비행기로 인천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변수를 고려해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는 시간으로 고른 건데요. 다행히 비행기가 연착되는 일 없이 무난하게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히 사우나까지 하고 나온 터라 상쾌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죠.


도쿄_031_하치고 외관.jpg긴자 하치고는 아담해서 정감이 가는 작은 가게였습니다 ⓒ기묘한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긴자 하치고는 정말 작고 아담한 가게였습니다. 좌석은 모두 카운터석으로 딱 6자리. 눈앞에서 라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요. 오는 길은 아무 문제없었지만, 이 자리에 앉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미슐랭이 주목할 만큼 맛있는 라멘집인데 자리는 고작 6개라니, 경쟁이 얼마나 치열할지 짐작되시죠?


방문 당시 긴자 하치고의 라멘을 맛볼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오래 기다릴 수 있거나, 손이 빠르거나. 먼저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은 예약 없이 찾아온 손님, 이른바 워크인 손님을 받았습니다. 이때는 여느 맛집처럼 기다림이 관건입니다. 몇 시간이고 진득하게 줄을 설 각오가 필요한 거죠.


반면 정오부터는 오직 예약 손님만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녁 영업 없이 오후 4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예약 자리 역시 결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피 튀기는 예약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에는 정기 휴무인 월요일을 제외한 다음 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예약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출국 전 주말 아침, 저와 아내는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저는 장렬하게 실패했습니다. 접속하자마자 시간대가 순식간에 차더라고요. 그런데 다행히 아내가 성공했습니다. 처음부터 노리던 토요일 오후 3시 반 예약을 훌륭히 해낸 거죠. 덕분에 남들은 몇 시간씩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라멘을, 사우나까지 즐긴 뒤 동네 산바카라 나오듯 여유롭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식값의 절반 가까이가 예약 수수료라고요?


이런 예약 전쟁, 사실 요즘은 국내에서도 익숙한 풍경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맛집은 곧 기나긴 대기를 뜻했죠. 하지만 줄 서기·예약 서비스가 빠르게 대중화되면서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예약 오픈 시간에 맞춰 피가 튈 만큼 치열한 티켓팅, 이른바 ‘피켓팅’에 도전하거나, 원격으로 대기를 걸어 두고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을 고려해 일정을 짜곤 하죠.


그런 면에서 긴자 하치고는 조금 특이한 곳이었습니다. 워크인 손님은 직접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예약하려면 우리에겐 낯선 예약 수수료를 내야 했습니다. 예약금을 걸었다가 돌려받거나 음식값에서 차감하는 게 아니라, 오직 예약을 위한 수수료를 따로 내는 겁니다. 제가 일본에서 방문하거나 예약을 시도했던 가게들 가운데서도 흔히 보던 방식은 아니었어요.


더 놀라운 건 수수료 금액이었습니다. 예약을 위해 지불한 돈은 1인당 500엔. 금액만 보면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긴 라멘집이잖아요. 가장 기본인 중화소바가 1,200엔이니, 수수료가 메뉴 가격의 절반에 가깝습니다. 결코 저렴하다고 하기는 어렵죠. 게다가 예약을 취소해도 환불이 안 된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도쿄_032_풀부킹.jpg예약이 너무 어려운 가게이기에 500엔을 내더라도 예약만 된다면 기뻐할 고객이 많아 보였습니다 ⓒ기묘한


여러분이라면 어떨까요? 기본 메뉴가 1,200엔, 가장 비싼 메뉴도 2,200엔인 라멘집을 예약하려고 500엔을 더 내야 한다면 기꺼이 내실 건가요? 누군가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비싸다며 차라리 줄 서기를 택할지도 모르죠. 그럼 저는 어땠냐고요? 솔직히 예약에 성공한 순간에는 500엔이라는 금액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려운 예약에 성공했다는 것, 맛있는 라멘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쁠 뿐이었죠.




‘시간’을 가격표로 만듭니다


음식값에 비하면 적지 않은 500엔에, 환불도 안 된다는 조건까지. 그런데도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힘은 뭘까요? 아마 그 돈으로 얻는 것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저만 해도 500엔이 아니라 그 두 배인 1,000엔도 낼 의향이 있었습니다. 짧은 여행 기간에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고 싶은 저에게, 한 식당을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는 건 좀처럼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한때 정말 자주 들리던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기억하시나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이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나왔다고 하죠. 여기서 예로 든 것 중 하나가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이걸 농담 삼아 우리가 행복해지기 어려운 이유로 들곤 했습니다. 온라인 게임인이 빵 나오는 시간에 맞춰 빵집에 가서 갓 구운 빵을 손에 넣는다는 건, 평일에는 꽤 어려운 미션이니까요.


맛집 앞의 긴 줄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원하는 행복을 누리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내야 하니까요. 특히 여행에서는 한 끼를 고르는 일도 신중해집니다. 먹을 수 있는 횟수가 한정돼 있으니, 기왕이면 검증된 곳에서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지죠. 많은 사람이 비슷한 선택을 하면 소수의 맛집에 손님이 몰립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던 노력이 오히려 더 많은 기다림을 요구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돈을 내서라도 시간을 아끼려 합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낄 수 있는 시간이 지불할 돈보다 소중한 거죠. 식당보다 이런 선택을 더 분명하게 보여 주는 곳이 놀이공원입니다. 인기 놀이기구 앞에서 오래 기다리는 대신, 별도의 우선 탑승권을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긴자 하치고의 예약 시스템도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이곳이 쓰는 예약 서비스 테이블체크의 대표 다니구치 유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 주면 고객이 기꺼이 돈을 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하죠. 오히려 어려운 건 식당 주인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놀이공원의 우선 탑승권처럼 돈을 내고 줄을 건너뛰는 ‘패스트패스’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2016년이지만, 2023년에 이르러서야 긴자 하치고 등을 시작으로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다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긴자 하치고는 왜 이런 유료 예약 서비스를 받아들이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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