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를 오해하는 방식

1부 나는 왜 나로 살기가 어려웠을까

by윤진

친척 어른들의 질문은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했다. 그들이 딱히 무례한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답하는 순간, 부족한 내가 들키는 게 싫었다.
학생이었던 내게 공부는 잘하냐는 질문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평범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에게 ‘아... 네...’라는 짤막한 대답 하나로, 그들이 보지 못한 나의 시간이 모두 게으름과 무능으로 평가되는 것 같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슬롯인이 된 이후에도 곤란한 질문은 피할 수 없었다. 그 질문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친척들 사이에서 내가 더 이상 질문받는 쪽이 아니라 질문하는 부류에 속하게 된 이후부터다. 그사이 나는 나이를 먹었고, 아이들은 자랐으며, 어른들은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났다. 삶은 지칠 줄 모르고 바삐 흘렀다.

지난주 추석을 앞두고 가족들과 납골당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우연히 큰집 언니네 가족을 만났다. 언니는 형부와 언니의 이모와 딸 둘과 함께 납골당에 왔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잘 지내지? 어떻게 지내?”

“맨날 똑같죠. 뭐.”


그런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 서로 말없이 웃으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나는 언니의 딸들에게 “예뻐졌다."라는 말을 덧붙여 보았지만 그 이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게 전부인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어볼 수 있는 것은 현재 그들의 근황뿐인데, 그들의 근황을 묻는 일은 어린 내게 그랬듯 불쾌한 일일 수도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불편한 어른이 되는 대신 말을 하지 않는 어른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잠시 후 우리 사이엔 정적이 흐르고, 자연스레 조금씩 거리가 멀어졌다.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보태준 것도 없는데 괜히 신통방통하고 기특해서 더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청하 납골당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말고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사촌 동생 등 여러 친척이 여러 건물에 뿔뿔이 흩어져 자리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 성묘하는 반면 큰집 언니네는 각자 흩어져 꽃을 꽂고 인사를 드리고는 다시 만난다고 했다. 놀라 커진 내 눈을 보고 언니가 말했다.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오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각자 하나씩 맡아 추모하고 온다는 말보다 매달 납골당에 온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어째서 매달 오는지 물었더니 그것이 가족 행사 중 하나라고 했다. 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납골당은 그저 만남의 장소일 뿐이었다. 언니와 아이들은 아직 같이 살고 있었다. 같이 살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건지 궁금했다. 솔직히는 부러웠다. 나이가 들수록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엄청 귀한데, 그런 사람이 가족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더 그랬다. 우리 가족은 커피숍에 같이 가더라도 서로 먼 산을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통하는 이야기가 오가기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화는 아빠의 지난 과거사로, 살아오면서 지겹도록 들어온 이야기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마음과 달리 막상 함께 있으면 추가 근무를 한 것 마냥 힘이 들어서 나는 자주 옆에 있어 드리지 못한다. 너무 사랑하는데, 함께 있는 게 힘이 든다. 마음과 행동은 다를 때가 아주 많다.


가족에게는 사랑하면서도 곁에 있기 힘들었다면, 회사에서는 반대였다. 싫으면서도 싫지 않은 척하는 게 일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윤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이해하기 위해 쓰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씁니다.

9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7화좋아함을 흉내 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