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괴롭힐 때
한 달째 빨래 바구니에 들어 있는 흰색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밝은 색 옷이 어느 정도 모이면 함께 빨 생각으로 넣어둔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 걸러 입어야 하는 도복을 먼저 세탁하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이러다 바지가 누렇게 변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고 나서야 바구니에서 꺼냈다. 그저 세탁기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일인데, 다급해지거나 큰마음을 먹어야만 몸이 움직인다.
그런 나를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영상에서 들었던 김미경 강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명절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유난히 피곤해하는 또래 남성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어깨에 얹힌 보이지 않는 기대의 무게를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은 어땠어요? ‘우리 아들, 우리 장손’ 하면서 이 집안을 일으켜 세울 사람은 아들이라는 식으로 말했잖아요. 그렇게 자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무거워요. 집안을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평생 어깨를 짓누르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가만히 있어도 힘든 거예요.”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짓누르는 에너지, 즉 ‘기(氣)’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을 나누지 않아도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불편해하는지 알 수 있는 기운 같은 것 말이다. 이 기운은 사람 사이에서만 흐르는 게 아니다. 청소나 운동, 공부를 시작하려 할 때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기운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때는 그 힘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지내는 동안에는 나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다가,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 그것의 존재가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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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나는 그 힘을 거의 매일 느끼고 있다. 내게 그것은 단단한 벽이라기보다 방금 햇볕에서 걷어온 실크 천과 같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적당한 온기로 내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버리고, 매트 위에서 운동할 때는 몸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부드러워서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몸 전체를 감싸며 끈질기게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어떤 날에는 그 힘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떤 날에는 가까스로 그것을 밀어내며 계획한 하루를 살고 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운동과 글쓰기에는 조금씩 습관이 붙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음의 짓눌림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는 것이다. 불안감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악에 받친 소리가 몸 밖으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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