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6월이 다시 돌아왔다

트라우마 기억과 살아가는 법

by김글리

화창한 가을 아침에 불안감을 느끼는 뉴욕 시민들이 있다고 한다.

9월 11일 테러 당일, 유독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쏜 총에 3방이나 맞고도 살아난 여성은 9월 선선한 저녁이 되면 두려움을 느낀다.

총기사건이 일어난 날이 9월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빨간 커튼이 달린 방에서 아버지에게 자주 성폭력을 당했던 한 여성은

이후 빨간색만 봐도 갑자기 불안에 휩싸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5월 꽃피는 봄날 5살 난 딸이 갑작스럽게 죽고 나서, 엄마는 정원의 꽃만 봐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행동했다.

꽃을 보면 딸아이가 생각났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나는 6월이 되면 극심한 분노와 짜증이 올라온다.

내가 사기를 당했던 게 6월이었기 때문이다.

6월이 다가오면 몸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뉴욕대학에서 신경과학을 가르치는 조지프 르두는 이를 '정서학습'이라고 부른다.

트라우마와 연결된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뇌는 위험하다고 해석하고 끊임없이 경보를 울려댄다.

경적소리, 화창한 날씨, 꽃, 선선한 저녁...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적인 것들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에게는 무시무시한 불안과 두려움을 낳는 요인이 된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일상으로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사기를 당한 2023년 이후, 매년 6월마다 이걸 경험한다.



좀비처럼 찾아오는 그날의 기억


나는 6월을 아주 좋아했다.

초록 가득한 숲과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2023년 이후 6월은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었다.


이후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울적해지고, 기분이 아주 나빠진다.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지고, 평소보다 훨씬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며, 울분, 증오, 적대감 같은 감정들이 고개를 쳐든다.


평화롭게 지내다가도, 사기 기억은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불쑥 솟구쳐 올랐다.

심리학에선 이를 ‘정서적 플래시백’이라고 부르는데,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소리, 장소, 사람, 상황 등을 접하면 당시의 감정이 다시 떠오르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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