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다시 상은의 엄마와 아빠를 만난 건 광화문 거리 천막 부스였다.
12월 초 겨울밤. 대통령이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소란스러웠다. 몇 주 뒤,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했다. 또다시 “탄핵!”을 외치며 여의도 국회 앞, 광화문 광장. 시청 앞 곳곳으로 매일 같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다. 승객을 비롯해 승무원까지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한 대형 참사였다.
아, 대체 왜.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일을 하면서 고통스러운 뉴스를 매일 듣고 또 읽었다. 곧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다.
며칠 뒤, 이정민 위원장 인터뷰 과정에 알게 된 이태원 참사 시민대바카라 회의 단체 텔레그램 채널에 알림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추모, 온전한 수습과 피해자 권리 보장! 생명존중 안전슬롯 시민대회>.
무엇인지 보니, 재난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과 생존자, 시민들이 함께 모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피해자들의 수습, 권리 보장을 위한 시민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 참가단체: 재난참사피해자연대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 인천인현동 화재참사, 2.1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7.18 공주사대부고병영체험학습참사, 4.16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오 침몰참사, 6.9 광주학동참사),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오송참사 유가족협의회, 오송참사생존자협의회,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 생명안전동행, 생명안전시민넷, 4.16 연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바카라회의,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바카라위원회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공지에 올라온 모든 단체 이름을 적어 옮긴다. )
돌아오는 새해 첫 주말 토요일. 그날은 은혜 언니와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기로 했던 날이었다. 공지를 본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언니에게 약속했던 것보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날 수 없냐고 물었다.
“언니. 혹시 저희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을까요?”
“나 앞에 선약이 있는데. 왜요?”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는데. 탄핵 집회 앞에 무안공항 참사 애도하는 집회가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실래요?”
“앞에 일정 마치고 최대한 일찍 가볼게요.”
집회에 참여하기로 한 날, 혼자라도 참석하자 마음먹고 시간에 맞춰 출발하는데. 언니가 일정을 소화하고 빨리 오고 있다고 했다. ‘와, 오늘도 든든하게 친구가 함께한다.’ 우리는 곧 경복궁역 앞에서 만나 시민대회 모임 장소로 향했다.
대통령 탄핵 집회 참가자들까지 많은 인파가 뒤섞여 있었는데, 어렵지 않게 집회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노란색, 보라색, 주황색 등 참사 유가족들의 상징하는 색상의 목도리 또는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었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시민연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간이 무대 앞,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 바닥에 앉아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 그 뒤편으로 우리도 자리 잡고 앉았다. “온전한 피해 수습” “피해자의 권리 보장” 참사 유가족과 시민 단체들, 일반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집회가 끝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도를 따라 쭈욱 줄지어있는 천막들을 바라봤다. 얼마나 많은지. 천막들 마다 집회에 나온 시민들에게 간식을 나눠준다고 쓰여있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설치한 노란색 천막 옆에 보라색 천막이 보였다.
“혹시 계시려나?” 은혜 언니는 한번 가보라 했다.
천막 앞에 이정민 위원장이 보였다.
“위원장님” 어깨를 쿡쿡 찌르며 불러본다.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이정민 위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내 이름은 기억 못 하는 것 같았지만 얼굴은 기억하는 것 같았다.)
“하... 또 이런 일이 생겼네요. 참..”
“에휴.. 그러게요..”
씁쓸한 표정과 함께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도로와 인도턱에 걸터앉아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죽 보니, 별들의 집에서 본 얼굴이 많이 보였다. 뒤편에 있는 보라색 천막으로 가봤다. 상은의 아빠가 있었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보라색 리본을 나눠주던 그가 나를 봤다.
“아, 안녕하세요. 상은이 엄마, 저기 앞에 앉아 있는데.. 저 쪽 앞쪽에 한번 봐보세요.”
“아, 네네!” 등을 돌려 다시 사람들 얼굴을 살펴본다. 상은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디 가셨지? 안 보이시네.”
“이따가 다시 오자.”
우리는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길 한 켠에 마련된 게시판을 발견했다.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메시지가 적힌 추모 게시판이었다. 그 위에 덕지덕지 붙은 알록달록한 포스트잇들. 우리도 잠시 머물러 추모의 말을 남겼다.
“앗! 잠시만!” 은혜 언니가 갑자기 인파 속으로 달려갔다.
언니가 머리가 희끗한 어떤 여인과 대화를 나누더니 껴안았다. 대화를 나누다가 언니가 눈물을 닦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잠시 뒤, 언니가 돌아왔다.
“저분은 누구세요?”
“아, 이한빛 피디 어머님.”
“아..!” 나는 그 여인의 얼굴을 다시 돌아봤다.
고 이한빛 피디. 대기업 방송국에서 드라마 신입 피디로 근무했던 그는 방송 현장 부조리한 실태. 비정규직들이 겪는 부당함과 차별에 절망하고, 이를 알리는 유서를 남긴 채 스물 일곱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뒤, 한빛의 부모와 가족들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하고 방송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 힘쓰고 있었다. 나는 방송업계에 종사하고 있기도 하고, 많은 언론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슬롯적 참사나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직접 찾아가 함께했다. 이번 무안공항 참사를 추모하는 시민연대 집회에 그들도 참여한 것이었다.
이들은 어떤 인연일까.
글쓰기 모임의 ‘모임장’으로 만난 은혜 언니는 나와 같은 방송작가다. 언니는 방송국에서 근무하다 겪은 부당한 해고를 고발하는 글을 써서 바카라을 한 권 출간했다. 그리고 그 바카라을 이한빛 피디 어머니에게 보냈다고 했다.
두 사람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로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이날 이 자리에서 우연히 얼굴을 처음 마주한 것이었다.
반가움, 포옹 그리고 눈물.
그 장면을 직접 본 나는 언니가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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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있는 천막 부스를 찾았다. 아까보다 훨씬 사람들이 많았다. 상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테이블에 가득한 보라색 리본.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어머! 혜정 씨!”
그러면서 내게 손짓했다.
“이리 와. 이리 와. 이거 초코파이. 초코파이 좀 가져가."
상은 엄마가 내 손에 초코파이 하나를 꼬옥 쥐어 주었다.
“오늘은 작가 선배랑 같이 왔어요. 이분이 선배 작가님이에요.” 나는 상은 엄마에게 은혜 언니를 소개했다. “아, 너무 반가워요! 여기 예쁜 리본이랑 팔찌가 많이 있어요. 가져가세요.” 하고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또 보자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오랜만이네요!”
고개를 돌리니 상은 아빠 옆에 10월 걷기 행사에 만났던 000 방송국의 그분. ‘선영 피디의 선배’인 분이 자신의 몸만큼이나 커다란 대형 피켓을 몸에 걸고 서 있었다.
“반가워요. 오랜만에 뵙네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도 나오셨네요.” 나는 이분에게도 은혜 언니를 소개해 줬다.
“이분은 △△△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작가 선배인 이은혜 작가예요. 오늘 집회 전에 시민대회 참여하려고 같이 왔어요.”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사실 내가 언니를 계속 소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 보세요. 이분도 마음을 함께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보셨죠?’라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네요. 나중에 또 봐요.”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혹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꼭 또 올게요. 그때 꼭 봬요.”
우리는 몇 초간 서로의 눈을 마주한 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분은 상은의 이모부였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준비하며 들었던 누군가의 이야기. 그것도 바로 상은이네 이야기였다. 이 인연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걸까.
모두가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 같지만, 어쩌면 생각과 달리 그 사이에 거리는 전혀 멀지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