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
빈손으로 갈 수 없어 비타 500 2통과 크리스마스용으로 나온 롤케이크 몇 개를 샀다. 양손에 간식거리를 들고 뒤뚱거리며 걸어가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내내 ‘또 부족할 것 같다. 부족할 거 같아. 아무래도 더 사야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별들의 집에 혼자 찾아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주 찾아올 수 있게 열려있는 장소임에도 앞을 지나가면서 고개를 쭉 내밀고 들여다볼 뿐 선뜻 공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상은의 엄마를 만나기로 했으니까. 당당하게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인사하는데 심장은 두근거렸다. 상은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었다. 그 자리엔 상은의 아빠와 다른 유가족 분들까지 꽤 많이 계셨다.
“같이 드시라고 사 왔어요.”
“아휴. 뭘 이런 걸 사 왔어.”
“많이들 계신데, 너무 조금 사 온 거 같네요.” 테이블 위에 사 온 것들을 올려두며 말했다.
“시민 모임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 글을 쓴 친구예요. 저번에 걷기 행사 때도 오고.” 상은 엄마는 가족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었다.
인사를 하며 얼굴을 보니 몇몇 분들은 낯이 익었다. 참사 프로젝트 시민 회의에서 만난 임익철 아버님도 있었다. “아, 저 아버님 성함 알아요. 임익철 아버님이시죠?” 깜짝 놀라 미소 짓는 임익철 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나! 이름도 알아?” 하고 가족 분들이 웃어주셨다.
아주 조금. 어쩌면 한 발짝 정도일지라도 그들과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경복궁 앞으로 이전한 ‘별들의 집’은 서울시청 근처 빌딩에 있던 공간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더 밝고 넓었다. 한번 둘러보라는 말에 어색한 걸음으로 새로 꾸며진 공간을 돌아보았다.
“여기 앉아요.”
친구들의 사진이 액자 담겨 걸린 벽 쪽에 있는 작고 둥근 소파로 상은 엄마가 안내했다. 우리는 옆으로 나란히 앉았는데 나는 상은 엄마의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아 제발.. 여기서 울면 안 돼.. 안 돼. 안 돼. 지금은 안 돼!’ 혹시나 눈물이 나올까 봐서 이를 악하고 물었다.
“이야~ 새로 옮긴 데가 훨씬 좋네요. 밝고 넓고!” 애써 씩씩한 척을 했지만 내가 듣기에도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응.. 여기 넓고 괜찮아요.” 공간을 눈으로 돌아보며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내 친구 중에 최혜정이라고 있어. 미국에 있는 친구인데. 내가 참 좋아하는 친구예요. 그래서 처음에 연락이 왔을 때 이름만 보고 헷갈렸지 뭐야. 하하.”
나도 용기를 내 말했다. “이메일로 말씀드렸지만, 같이 찍은 사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만났을 때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상은 엄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명동 성당에서 세례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 그동안 상은의 이야기를 알고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해주고 기도해 줬다는 것. 그리고 상은의 또래 정도가 되는 친구들이 나처럼 찾아와서 마음을 나누고 인연이 됐다는 것. 상은 엄마는 그 마음들이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내 입술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는데, 코끝은 반대로 찡해지고 있었다.
“우리 같이 세례 받았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어요.”
“응. 그러게. 나는 상은 아빠랑 같이 받기로 해서 미뤘어요. 우리는 3월에 같이 받을 거예요.”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뒷짐을 지고서 앞을 서성이던 상은 아빠는 자신의 세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우리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러고는 상은 엄마가 앉은 작은 소파에 조용히 엉덩이를 밀어 넣으면서 앉았다.
작은 소파에 부부가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있는 모습. 나는 그게 너무 귀여워서 그만 웃고 말았다.
“아버님. 세례 꼭 받으세요. 세례 꼭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말은 하고 싶은데 어떠한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나는 계속 이 말을 반복했다. 열심히 교리 수업 듣고 세례를 꼭 받으면 좋겠다고. 꼭 그러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