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일상에 다시 적응하는 가운데도 나는 계속 유가족들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시간이 나면 기사를 검색해 보고 또다시 보고. 아무래도 그들을 직접 만난 것이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이전에 가족들 앞에 나가 자기 소개할 때, 말을 너무 못 하기도 했거니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해서 ‘그때 이렇게 해야 했는데. 다 말했어야 했는데.’ 하고 가끔 혼자 벽에다 대고 말도 여러 번 해봤다. 그만큼 무언가 아쉽고 후회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안 하던 짓을 하게 됐다.
인스타그램에 팔로우된 상은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SNS는 부모님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용기로 보냈는지 정말 모르겠다. 연락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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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선이 어머니.
저는 지난달 시민 함께 걷기에서 만났던 최혜정이라고 합니다.
글쓰기 프로젝트를 한 친구들이에요,
혹시 이메일이나 카톡 연락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말씀 전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인스타그램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연락드립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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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이렇게 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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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상은이 엄마 강선이예요.
기억하죠. 소식 주셔서 반가워요.
제 이메일은 ***@***.***이에요.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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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연락을 하고서도 돌아온 답장에 어쩔 줄 몰라했다. 혹시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저렇게 메시지를 보냈으면 나는 분명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무슨 생각으로 다짜고짜 연락했을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주저하던 나는 이메일에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다 적어보기로 했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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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제 인스타그램으로 잠깐 연락이 닿았지요.
지난달 이태원참사 시민 걷기 프로그램에서 얼굴 뵈었던 빠띠 프로젝트 참여한 최혜정 작가입니다.
(...)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리게 된 이유는... 그저 문득 연락 한번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언젠가 다시 뵙게 되면 말로 전하려고 했는데, 막상 얼굴 보면 제가 제대로 말을 못 할 거 같아서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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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에 쓴 나의 이야기들을 모두 정리해 적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지의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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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음표를 짓기 싫지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난 몇 달간 이태원 참사에 집중해 관심을 가지고, 한 두 달간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활동을 한 것은 정말 하느님께서 나를 이끄신 게 아닐까. 어쩌면 상은 씨와 많은 별이 된 친구들이, 가서 엄마 아빠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보낸 게 아닐까.
요 며칠 동안,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강하게 떠올랐네요. 제가 너무 과하게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보낸 글이라 많이 놀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제 마음을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보니 아버님 하고 어머님 하고 내년 3월 함께 세례 받으신다고 하더군요.
두 분이 꼭 세례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례를 받고 나서 참 좋더라고요. 그간 아팠던 몸과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거든요. 결혼식도 하신다고 했는데, 그 약속도 지키시면 좋겠습니다. 명동성당 교리수업이 참 빡빡하긴 합니다. 기도문도 열심히 외우고, 수업도 꼭 다 참여해야 하고요.
어머니. 저는 계속해서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유가족 분들이 너무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슬롯 곳곳, 그리고 우리 주변에 참 많은 이들이 마음을 함께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새로 이사한 별들의 집은 어떤가요? 궁금하네요. 나중에 한번 찾아가야겠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할게요. 조금만 쓰려고 했는데.. 너무나도 긴 글이 되었지요?
갑작스럽게 보낸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마무리 인사를 하겠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최혜정 가브리엘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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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의 처음부터 여기까지 적어 내려오는데 한참이 걸린 것처럼, 이메일에 담아야 할 말은 한 가득이었다. 물론 지금 쓰고 있는 글보다 압축적이었지만. 길고 긴 글에 나는 꽤나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얼마 뒤, 상은의 엄마가 나에게 이렇게 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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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 있는, 제 친구 중 젤 훌륭한 친구 이름이 최혜정이에요.
처음엔 그래서 잠깐 헷갈렸어요.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 나눠주셔서, 극복해 내셔서 고마워요.
상은이가 참 많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주는 거 같아요.
혜정 씨와의 인연은 더욱 각별하네요 같은 교리 수업을 들었다니.
암브로시오 신부님은 상은이 장례식장에 와서 기도해 주셨던 분이세요.
상담할 때 알게 돼서 얼마나 놀랐나 몰라요. 이것도 하느님이 정하신 일인지 모르겠네요.
상은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교리수업이라도 마무리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거라 아직 신앙심이 많이 부족해요. 원래 유물론자였거든요.
새로 이전한 별들의 집에 오셔서 얘기 나누면 좋겠네요.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바카라 한 권 선물드리고 싶어요.
몸과 맘 건강 잘 챙겨가며 살아요 우리.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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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받은 나는 휴대폰을 붙들고 한참을 펑펑 울었다. 눈이 팅팅 부어서 뜨기 아플 정도로.
‘상은이가 참 많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라는 말에서 나는 맞다고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지나가는 길에 언제 어디에선가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스쳤을지도 모르는 상은이 우리의 인연을 이렇게 만들어주었다는 것.
마음이 진정된 뒤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별들의 집 당번을 맡으셨다는 날 중에 날을 하나 잡아 찾아뵙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