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내 세례명은 ‘가브리엘라’다.
가브리엘라는 3대 대천사 중 하나인 ‘가브리엘’의 여성형 이름이다. (어쩐지 ‘라’를 붙이는 게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싶어 그냥 가브리엘이라 하고 싶었지만, 여자는 꼭 ‘라’를 붙여야 한단다.)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찾아가 예수의 잉태를 알려준 ‘수태고지’로 유명한 천사다. 하느님의 말씀과 중요한 소식을 알리는 천사로 주로 성경에서 메신저, 전달자로 또 예언자로 그려진다. 현시대에서는 우편배달부나 라디오, TV 등 텔레커뮤니케이션 종사하는 이들의 수호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여러 세례명을 후보군으로 두고 고르다가 막판에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이 세례명을 골랐을 때, 나는 이 세례명이 나와 맞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정해놓고도 얼마간 ‘나랑 어울려요? 너무 안 어울리지 않아요?’라고 물어보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 뒤늦게 참 잘 골랐다고 말한다. 나는 방송작가라는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일하고 있고 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니까.
일을 하면서 어떠한 소식이나 정보를 전달할 때, 또는 마음을 전달할 때 글이든 말이든 진심을 담아 제대로 전하고 알려야 한다는 게 내 절대적 생각인데, 세례명을 정하고 나서는 그 마음이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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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계획에 없던 일들이 나에게 우연히 다가왔고 그 안에서 나를 일으키고 성장하게 하며 살게 했다.
내게는 세례 교리 수업을 받는 시간이나 글을 쓰는 시간,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시간이 모두 우연처럼 다가왔다. 그로써 누군가와 함께 할 시간과 내가 짧은 글을 씀으로써 도움이 될 수 있는 특별한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어느 날 성경 구절이 나에게 말을 해주었듯. 나는 내 마음이 그 과정 안에서 항상 진실하기만을 바랬고 또 진실하려고 노력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글을 쓰는 건 조심스러웠다. 갑작스럽게 나의 아들, 딸, 나의 오빠, 누나 또는 동생 등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내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뿐더러 뭘 얼마나 안다고 쉽게 끄적이며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쓰고 같이 걸으면서 그냥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싶었고 힘이 필요하다면 힘이 되고 싶었다. 잘 쓴 글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담아 썼고, 그 마음이 부디 잘 전달되길 바랐다.
추모제가 끝난 다음 날까지도 나는 대형 스크린에 대문짝만 하게 나온 내 못생긴 얼굴을 여전히 창피하고 부끄럽게 여겼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어쩌면 저 퉁퉁 부은 얼굴로 말하는 화면을 통해 누군가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셨을지 모른다고.
나는 스스로 떠안은 묵직한 숙제를 끝낸 마음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