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전 이태원에서 도보 행진을 시작하고, 저녁 서울 시청광장에서 시민과 함께 추모제를 치르며 하루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사실 추모제 포스터를 붙일 때마다 생각했지만 넓은 광장에 사람이 얼마나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던 지인들에게 함께 추모제에 가자고 했다.
지인은 글쓰기 모임의 모임장인 은혜 언니와 글벗인 은선 언니였는데. 이미 내 글을 읽은 이들로 나의 이야기를 잘 알기도 했거니와 '함께 하자'는 것에 거절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묻자 역시나 고맙게도 그들은 자신들도 함께 하겠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한별이까지 넷이서 그 자리를 채우기로 했다.
추모제 시간에 맞춰 광장에 도착했다.
잔디밭 둥근 원을 따라 여러 개의 천막 부스들이 쳐져 있었다. 한 부스에서는 보라 리본, 보라 팔찌를 나눠주고, 다른 부스에선 희생자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긴 수필집을 판매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희생자와 생존자, 유가족을 지원하는 슬롯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부스도 마련돼 있었다.
나는 오늘 만나는 이들에게 주려고 새로 나온 바카라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를 몇 권 구매해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저녁 6시 34분이 되자, 추모제가 시작됐다.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했고 이어서 이정민 위원장이 인사말을 했다. 159명의 참사 희생자들을 떠올리는 화면이 비치고 추모 메시지와 공연이 이어졌다. 곧 한별이와 은혜 언니, 은선 언니가 차례로 와서 자리를 채웠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광장이 보랏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깜짝 놀란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흐느끼는 소리와 희생자들을 안타까워하는 중노년층 어르신들의 탄식이 종종 들렸다. 젊은 청년들이 혼자서 찾아와서 자리를 지키는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불빛이 꺼지고 영상 하나가 스크린에 흘러나왔다.
참사 이후, 뉴스를 통해 상황을 내내 지켜봐 왔지만 지난 2년의 시간을 ‘참 빠르게 흘렀다.’고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엔 매일 같이 많은 일이 있었다. 펑펑 눈이 내리든, 속절없이 비가 쏟아져 내리든. 거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외치던 유가족의 모습. 국회에서 싸우던 수많은 그들의 외침이 긴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면 가슴이 마구 저릿해 오고 눈물이 나온다. 그런데, 눈물을 닦으며 영상을 보던 내가 순간 경악을 하고 말았다.
"으악!!!!!"
커다란 대형 스크린에 나와 한별이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지난 '시민 함께 걷기' 행사에서 인터뷰를 찍어간 분들이 ‘어딘가에 영상을 짧게 쓸 수도 있다. 써도 괜찮냐.’ 물었는데, 이게 여기서 틀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목소리가 서울 시청 광장에 광광 울려 퍼졌다. 온몸이 후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엎드려 무릎에 얼굴을 파묻다가 얼굴을 돌려 한별이를 바라보니 한별이도 너무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오~!" 옆에서 신이 난 은혜 언니와 은선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놀린다고 깔깔대며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아, 이렇게 나올 줄 알았으면 할 때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피곤함에 찌들어 얼굴이 퉁퉁 부었고, 몰골이 말도 아닌데, 말 또한 조리 있게 하지 못한 것 같아 무척 부끄러웠다. 우리가 나온 영상이 지나간 듯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시민이 우리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