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건 모험, 성당에 가는 건 낯선 일

by최이삭

#2.


글쓰기 모임은 신청하는 것부터 엄청난 모험이었다. 평생 내 심장에 못 박아 쌓아 둔 이 돌덩이 같은 이야기들을,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꺼내 놓는다고? 아무리 상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 바로 발을 빼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허허..’ 거리면서 넉살 좋게 웃고 괜찮은 사람인 척 연기할 힘도 없었다.


‘죄송해요. 저는 못 가겠어요.’ 하는 나에게 ‘일단 나와 나 봐라.’ 모임장이 말했다. 그 말에 꾸역꾸역 모임을 나갔다.


모임 전, 멤버 각자가 짧은 글을 하나 써서 모임 게시판에 올리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글을 썼는데 올릴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이 쓴 글을 소개했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마지못해 핸드폰에 저장해 온 글을 꺼내 들었다.


내가 쓴 건 엄마에 대한 얘기였는데 첫 줄부터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 처음 본 사람들인데.. 그 순간이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모임에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나는 다음 모임에 또 나갔다.


이번엔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야기를 써냈다. 읽으며 또 오열을 했다. ‘하, 사람들이 나를 진상 취급하겠지.. 그럼 무시해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내 이야기에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비웃는 사람도 없었다. 한 번, 두 번 그러고 나니 이후부터 글 쓰는 게 어렵지 않았다.




#3.


성당을 나가는 건 낯선 일이었다. 그런데, 마음 비빌 구석을 두고 살아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인지 아니면 정말 삶의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붙들고 싶었던 것인지. 이번에는 세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례 교리 수업반에 등록하자 나이대별로 그룹을 꾸려줬다. 나는 3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조에 막내가 됐다.


운이 좋게 좋은 분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조원들 서로가 서로에게 꽤나 다정하게 굴었다. 그래서 신부님께 교리 수업을 듣는 것보다 수업 끝나고 잠시나마 만나서 인생 얘기를 털어놓는 '나눔'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한 주 한 주 지나갈수록, 사람들에게 정을 붙일수록. 새까맣고 텅 빈 구렁텅이 같던 내 마음에 잠깐이나마 빛이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세례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6개월 간 매주 목요일 교리 수업을 듣고, 나눔이라는 모임을 하고, 주일에는 미사를 가서 신부님께 출석 사인도 받아야 했다. 출석 카드에 적힌 미션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성지순례도 가야 하지, 난생처음 듣는 피정이란 것도 가야 하지, 기도문도 외워서 검사를 받아야 하지. 성경 필사도 해야 했다. 이중 빠진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세례를 받을 수 없단다. 하지만, 나는 백수였으니까.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었다.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성실하게 수업을 나갔다. 항상 지정석인 양 왼쪽 앞부분 끝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주로 내 앞엔 모자를 곱게 쓴 할머니가 앉아 계셨고 오른쪽 부근엔 병을 앓고 회복기에 접어들어 성당을 찾았다는 민머리 청년이 앉았다.


신부님은 수업을 하다가 종종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돌발 질문을 했다. 난 질문이 내게 올 것 같다 싶으면 눈알을 딴 곳으로 휙 굴려버리거나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 나와 반대편 오른쪽 앞줄에 앉은 중년의 단발머리 여인이 단골 질문 대상자로 당첨됐다.


신부님의 질문은 쉬운 듯하면서도 답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성경이나 교리에 대해 얼마나 올바른 답을 할 수 있으며, 또 정답을 알 수 없는 ‘삶’과 ‘신앙’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안다고 이래저래 답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인은 항상 당돌한 듯 아닌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말끝에 "그런 게 아닐까요?"를 붙이면서. 그리곤 고개를 살짝 돌려 옆을 쳐다봤다. 괜히 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녀는 생긋 웃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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