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시간

by어느 번역가

이번 겨울 한국을 다녀오는 길에 도쿄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로 했다. 일본은 처음이라 유튜브를 뒤지며 동선에 감을 잡기로 했다. 도쿄 총정리를 표방하는 여행 채널도, 맛집 채널도, 쇼핑 채널도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우연히 한 커플의 채널이 눈에 들어왔다. 캐나다에서 자랐고 지금은 홍콩에 사는 젊은 커플이었다.


주로 도쿄 편을 봤다. 후쿠오카나 서울, 캐나다와 미국 영상도 있지만 도쿄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여행 채널이면서도 여러 곳을 넓게 훑기보다 한 도시를 깊게 파고드는 쪽이었다. 영상 하나에 카페와 식당,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여럿 등장한다. 카메라를 보고 시청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움직임이 간결하게 보이도록 편집하고 가끔 설명을 덧붙이는 식이다.


한번 재생하면 끊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됐다. 오늘 밤에도 봐야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도쿄에 가기도 전에 너무 많이 봐서 신선도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빼면 계속 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왜 이렇게 계속 보고 싶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답은 간단했다. 내 취향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어서였다. 모든 취향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찾아가는 카페와 라이프스타일 매장은 나도 꼭 가보고 싶은 곳들로 가득했다.


이들의 홍콩 집을 보면 감각이 좋다는 걸 알 수 있고 그것이 영상에 그대로 녹아 있다. 어느 영상을 보니 촬영할 때도 각도와 거리, 배경과의 어우러짐에 공을 들이는 게 엿보였다. 이런 걸 배워서 알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체득한 감각이 영상에 배어 나오고 그것이 채널을 이끄는 기반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 영상들을 보다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나도 카페를 좋아한다. 라이프스타일 매장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가면 백화점만 뻔질나게 드나든다. 카페는 지도에 표시해두고 몇 군데 가기는 하지만 거기서 내가 원하는 시간을 보내는지는 늘 의문이었다. 차분히 바카라을 읽거나 뭔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백화점으로 발길이 향한 건 아마 원래 깨끗하고 친절한 공간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내 취향의 뿌리는 공간에 있는 것 같다. 정돈되고 조용한 곳, 내가 머무는 자리. 카페도 갤러리도 그 연장선에 있다. 갤러리는 그 공간이 좋아서 가긴 했지만 작품을 잘 모르니 늘 겉돌다 나왔다. 다음엔 설명도 듣고 바카라자도 읽으면서 알아가야지 하는 막연한 다짐만 반복했다.


이번 겨울 방문에는 처음으로 전시 정보를 미리 조사하고 있다. 어떤 작가인지, 어떤 성격의 전시인지, 예매는 어떻게 하는지까지 기록하고 있다. 기왕 가는 거 미술에 대한 안목도 조금씩 길러보고 싶어서다. 그러다 보면 이 취향이 더 짙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다.


취향이란 게 결국 뭘까. 좋아하는 걸 아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과 그것을 제대로 누리는 능력은 다른 것이었다.


취향은 아는 일이라기보다 겪어보는 일에 가깝다. 무엇이 좋은지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채워지는지를 모를 뿐이다. 그건 시간을 들여 부딪혀봐야 알게 된다.


내가 사는 곳은 미 동부 최대 아울렛인 우드버리와 비교적 가깝다. 야외라 공기도 좋고 걷기도 좋아서 주말이면 자주 간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세일 폭이 크니 이것저것 많이 샀다. 득템할 기회도 많았고 그중에는 지금까지 잘 입는 옷들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80퍼센트 마음에 드는 걸 서너 개 사는 것보다 100퍼센트 마음에 드는 걸 하나 사는 게 낫겠다는 것. 그러니까 100퍼센트 마음에 드는 것, 그게 내 취향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아울렛에서 수없이 많은 옷을 샀고 그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내 기준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사봐야 아는 것이고, 먹어봐야 아는 것이고,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봐야 아는 것이다. 한두 번, 한두 해로는 알 수 없다. 어디 취향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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