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가장 갈증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아마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일 것이다. 걸어서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가능하지 않으니 아쉬운 대로 나중을 기약해야 한다. 한국에 갈 때마다 오롯이 주어지는 일주일 동안에도 미리 카페 몇 군데를 골라두고 일부러 찾아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런 갈증 때문이리라.
우리 동네에는 갈 만한 카페라고는 스타벅스뿐이다. 단 것이 당길 때나 가깝고 편리한 업무 공간이 필요할 때는 이용하지만, 딱히 카페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는 곳은 아니다. 그럼 가고 싶은 카페가 어딜까 생각해보면 역시 선택지는 맨해튼뿐이었다. 이사 온 첫 몇 년은 한 달에 한두 번은 나갔던 것 같다. 딱히 할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 노트북을 꾸역꾸역 들고 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좀 멀고, 주차 때문에 일요일에 가야 하고, 한 번 갈 때마다 평균 2만 원이 넘는 톨 비용을 두 번 내야 한다. 카페 한 번 가자고 그런 수고와 비용을 들이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았다.
이런 카페 갈증은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옮겨붙어서 한국에 갈 때마다 여러 카페를 번갈아 찾아다니게 만들었다.
올해 프로젝트 성수기를 맞아 새로운 작업 환경이 필요해서 동네에서 십 분 남짓 거리에 있는 남의 동네 다운타운을 가보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맘에 차는 카페 하면 맨해튼이라는 고정관념이 무색해졌다. 옛 주거 공간에 차린 듯 작고 낡았지만 저력이 느껴지는 커피숍, 로스팅 공간과 바리스타 교실까지 갖춘 쾌적하고 젊은 분위기의 카페, 커피보다 음식에 더 집중한 널찍한 카페까지. 구석구석 꽤 많은 곳이 있었다.
평소엔 주로 집에서 작업한다. 평일 외출이라곤 강아지와 산바카라하거나 점심을 픽업하러 나가는 정도라 편한 복장이 대부분이다. 카페에 갈 때는 그보다 조금 더 차려입는다. 그러다 보니 기분이 달라졌다. 혼자 있을 땐 기분이 고양될 일이 거의 없는데,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그게 조금씩 차오른다. 강아지를 시터에게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이제는 어서 카페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지난 몇 달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카페들을 돌아가며 일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맘에 드는 카페라도 그곳에서 할 일이 없다면 그리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그 자리를 채울 일이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할 일이, 그것도 꾸준히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낀다. 지난 5월 초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바빴다. 기존 거래처에서 번역 프로젝트를 전량 맡겨주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 덕분일 것이다. 올해는 신규 거래처를 세 곳 더 발굴해 함께 작업하고 있다. AI 파도 속에서 번역가로 설 자리가 있을지 걱정하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일정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래전부터 바랐던 것이 있다. 반 년이나 일 년치 일정이 미리 차 있는 상태로 일하는 것. 열심히 일하다가 그 사이사이에 여유롭게 여행도 가고 취미 생활도 하는 삶이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번역을 시작하면서 그 바람이 현실이 됐다. 봄이 되면 거의 일 년 치 일정이 다 찬다.
그 일 안에서 신기한 경험도 했다. 올 초 MSCI, DJSI 같은 글로벌 등급기관을 조사해서 정리해두었다. 자기계발 차원에서 언젠가 번역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DJSI 평가 대응 작업이 들어왔다. 공부한 것을 쓸 기회가 이렇게 딱 맞게 주어지다니, 역시 공부해서 남 주지 않는다.
요즘 마음을 채우는 건 안도감이다.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감각. 일에만 집중할 수 있고, 해마다 더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조금씩 보인다. 바쁜 성수기 중에도 비수기에 뭘 하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렇게 비수기에 자기계발과 시스템을 다져두면 다음 성수기에 다시 도움이 된다. 그 돌고 도는 흐름이 이제 막 시작된 듯하다. 그리고 그 흐름은 지금 카페에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일이 있어 카페가 즐겁고,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 다시 다음 일의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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