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AI 효율화 이야기를 주로 올렸는데 이번에는 본업 모먼트로 돌아가려고 한다.
ESG 컨설턴트들과 교류하다 보면 영어 원고 앞에서 막히는 지점이 보인다. 한국어로는 거침없이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영어가 되는 순간 달라진다. 영어를 모르는 게 아닐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글로벌 공시 문서가 요구하는 톤앤매너, 표현 관례, 문서 구조의 일관성. 이건 영어 실력과는 별개의 영역이다.
미국에 산 지 30년이 됐다. 그 시간 동안 저널, 보고서, 공시 문서를 읽고 쓰면서 체화한 것들이 있다. 원어민이라고 이런 감각을 자동으로 갖추지는 않는다. 글로벌 보고서가 요구하는 문법을 익히고 거기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 그게 번역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디테일이 흐트러지면 내용이 좋아도 아마추어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기업들이 MSCI, DJSI, CDP 같은 평가기관의 점수를 받기 위해 ESG 보고서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게 됐다. 같은 내용도 어떤 언어와 구조로 쓰느냐에 따라 평가에 잡히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리서치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지금까지 번역가 관점에서 정리한 것들을 나눠보고 싶어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내가 실무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세 기관, MSCI, DJSI/CSA, CDP를 한 편씩 다룬다.
영문 ESG 보고서는 한국어 보고서의 번역본이 아니다. 글로벌 투자자와 ESG 평가기관은 한국어를 읽지 않는다. 그들이 읽는 언어로, 그들이 기대하는 구조로 처음부터 다시 쓰는 문서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한국 기업이 늘었다. 하지만 영문판까지 갖춘 곳은 여전히 많지 않다.
영문 보고서를 읽는 사람들
MSCI, DJSI, CDP 같은 글로벌 ESG 평가기관은 기업의 영문 공시 자료를 직접 수집해 평가에 반영한다. 영문 보고서가 없거나 불완전하면 그 기업의 ESG 활동은 평가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잘 실천하고 있어도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세 기관이 각각 다른 것을 본다
영문 보고서를 만들기로 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평가기관마다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MSCI — 평가가 요구하는 지표와 용어로 기업을 평가한다. 그 표현으로 쓰이지 않으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
DJSI/CSA — 설문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답해야 점수로 연결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 방식이 맞지 않으면 분석가의 판독에서 빠진다.
CDP — 단계별 서술 수준을 충족해야 등급이 오른다. 하위 단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위 단계 점수 자체를 받을 수 없다.
같은 내용을 쓰더라도 어떤 언어로, 어떤 구조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진다.
번역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옮기는 일이다. 한국어의 논리를 해체하고, 영어의 논리로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어떤 기관이 무엇을 보는지 이해하고 그에 맞는 언어와 구조로 다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영문 보고서는 번역 비용이 아니다. 글로벌 투자자와 평가기관에 자사의 ESG 활동이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한 투자다.
다음 편에서는 MSCI가 영문 공시에서 실제로 무엇을 보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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