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창을 통해 슬쩍 보기만 하던 갤러리에, 들어갔다

by어느 번역가

올해는 내가 미국에 온 지 30년이 되는 해다. 딱히 기념일처럼 인지한 건 아니었다. 작년 어느 날, '내년이면 2026년이네' 하고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따라온 숫자였다. 그리고 그 숫자와 함께 하나의 다짐이 생겼다. 언젠가 미국을 떠날 때 좀 더 열심히 다닐 걸 하는 후회는 남기지 말자.


올 초에는 뉴저지가 가장 춥던 시기에 플로리다로 향했다. 그 후엔 일정이 맞아 라스베이거스도 다녀왔다. 곧 뉴잉글랜드도, 콜로라도도 갈 것이다. 유럽이 아니라 미국 안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 여행만이 아니다. 저녁마다 스트리밍으로 영미권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고, NPR 팟캐스트도 듣는다. 중동 전쟁 뉴스부터 TED 라디오, AI까지. 미국 언론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게 20대 초와 닮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일이다.


그때는 신기함과 조급함이 지배했다. 새로운 문화에 빨리 녹아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낡은 비디오테이프에서 나오는 전국노래자랑조차 반가운 한국인임을 부인할 수 없었지만, 그 마음을 애써 밀쳐내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 콘텐츠의 편안함에 너무 기울어 있었다는 자각이 있었다. 영미권 쪽으로 다시 귀와 눈을 돌리는 일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다. 조급함이 아니라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것들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시스템을 갖추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면서도 업무의 공백은 생긴다. 그 시간을 일 외의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다. 걷고, 팟캐스트를 듣는 것 말고.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공간.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공간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미국에 사는 동안 한 번도 개인 갤러리에 발을 들인 적이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하이라인 23번가 출입구 바로 옆에 갤러리가 하나 있다. Jim Kempner Fine Art. 코르텐 스틸로 마감된 러스틱 한 파사드에, 좁고 긴 직사각형 창이 나 있다. 그 창으로 자갈이 깔린 작은 정원이 보이고, 그 너머로 통유리 실내와 작품들이 어렴풋이 들어온다. 지나칠 때마다 그 창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슬쩍 들여다보기만 했다. 갤러리는 왠지 모르게 문턱이 높게 느껴졌다. 이 갤러리를 여러 번 스쳐 지나가면서도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었다.


지난주에 맨해튼을 가면서 이번엔 꼭 들어가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 물었다. Can I just have a look around? 데스크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환영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공간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작품들이 벽을 가득 채우지 않았고, 사람도 나 혼자였다. 조용히 둘러보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왜 진작 안 들어와 봤을까.


20대 초의 나는 미국 문화에 녹아들려고 애를 썼다. 50대 초의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초라하지 않을 정도의 안정감이 생겼고, 새로운 시도 앞에서 조급하지 않다. 조급함이 빠진 자리에 기대감이 들어앉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최근엔 아트바젤 리포트도 받아보기 시작했다. 50대 초의 호기심은 이런 식으로 조용히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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