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 세 개가 하나의 워크스페이스가 되기까지

by어느 번역가

쇠뿔도 단김에


확대 메모리 MVP(핵심 기능만 갖춘 초기 버전)가 돌아가는 걸 보자마자 다음 생각이 떠올랐다. 인보이스다.


프리랜서 번역가의 인보이스는 단순하지 않다. 미국 고객, ESG 보고서 고객, 크몽 플랫폼 고객은 통화도, 단가 계산 방식도, 인보이스 언어도 전부 다르다. 같은 "인보이스"라는 이름 아래 완전히 다른 문서가 세 종류 존재하는 셈이다. 이것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고객 유형에 따라 자동으로 전환되게 만들었다. 기획이 깔려 있으니 구현이 빨랐다.


다음은 ESG 보고서 관리였다. 100페이지짜리 보고서의 페이지별 작업량과 진행률을 추적하는 시스템인데, 인보이스와는 차원이 다른 복잡성이었다.


벽이 가르쳐준 것


바이브 코딩이 마법이 아니라는 걸 이 구간에서 배웠다. 무료 호스팅의 기능 수 제한에 막혔고, PDF 출력 시 내 시스템의 웹 주소가 고객 문서에 노출되는 보안 문제를 발견했고, 실수로 핵심 파일을 삭제해서 간담이 서늘해진 적도 있었다.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깨달은 것은 벽 자체보다 벽을 만났을 때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기능 제한은 구조를 더 깔끔하게 정리하는 계기가 됐고, 보안 문제는 앱 자체에서 PDF를 생성하는 더 나은 방식으로 이어졌다. 코딩을 못하는 건 여전했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AI와 대화하며 방향을 잡는 일은 할 수 있었다. 바이브 코딩은 코딩 실력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감각을 요구했다.


한 곳에 모이자 보이는 것들


세 개의 MVP가 각각 돌아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따로따로였다. 통합 작업에 들어가면서 재밌는 경험을 했다. "좌측 패널"이라고 말로 설명했더니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나왔는데, 손으로 직접 스케치해서 보여주니 한 번에 맞게 수정해 주었다. AI와의 소통에도 요령이 있다는 걸 몸으로 익힌 순간이었다.


작년에 GPT 액션과 Make를 거쳐 Notion에 저장하던 블로그 관리도 자체 앱으로 가져왔다. 인보이스, ESG 보고서, 확대 메모리, 블로그 관리가 한 곳에 모였다. 앱 이름을 "하나의 워크스페이스"로 정했다.


도구가 따로 놀 때는 각각의 문제만 풀었다.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 이것들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그 방향이 선명하지는 않다. 다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내 일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다음 단계라는 감각은 생겼다.


자기 일을 이해하는 도구


아직 핵심 기능만 갖춘 초기 버전이다. 다듬을 것도 많고 추가할 것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확인한 것이 있다.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건 더 좋은 도구가 아니라 자기 일을 이해하는 도구다. 남이 만든 서비스는 범용적일 수밖에 없다. 내 고객 유형, 내 업무 흐름, 내 관리 방식에 딱 맞는 도구는 결국 자기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바이브 코딩은 그 길을 열어줬다. 코딩을 포기했던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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