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잠시' 살았습니다》
28인치 캐리어 2개, 단프라박스 4개, 기내 캐리어 1개, 어린이 캐리어 1개, 백팩 2개, 바이올린 2개. 다 합치면 대략 150kg 가량 되는 거대한 짐들과 함께 공항으로 출발했다.
아이들과 나부터 먼저 출국하는 것이어서, 당초 계획대로라면 짐 줄이고 단촐하게 떠나자!였는데, 한국 집을 비우다보니 여기서 버리나 미국가서 버리나 매한가지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 결국, 어차피 미국에서 새로 다 사기 아깝다는 논리로 쓰던 주방도구들까지 담기 시작하면서 최대한의 짐을 이고지고 떠나게 됐다.
다행히 친절한 공항 직원분이 '취급주의' 스티커까지 일일이 붙여주고, 환승공항의 짐 연결 이동 경로까지 자세히 설명해줘서 1단계는 한시름을 놓았다.
사실 남편과 이렇게 장기간 떨어지는건 생전 처음이었는데, 이른 새벽부터 아이들 챙겨서 거대한 짐들과 이동하다보니 눈물의 세이 굿바이 이런 건 할 겨를도 없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남고 만나자!"
이토록 결의에 찬 다짐이라니.
14시간 장거리 비행에서 가장 걱정되는건 아이들의 멀미였다. 워낙에 일반 차에서도 멀미를 하는데다, 딸 아이의 경우 4년 전 미국에 다녀갈때 왕복 비행기 모두에서 기내식 한끼 입에 대지 못하고 14시간 내내 멀미를 했던 엄청난 이력(?)이 있던터라 출발 전부터 긴장을 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맛 없는 멀미약의 효과였을까, 아니면 그 사이 아이들이 많이 자란 것일까. 만석인 기내에서 키즈밀도 잘 먹고 영화도 보고 잠도 자면서 너무나 수월하게 비행을 했다.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하자 이제 가장 난이도 높은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국 심사와 환승. 지금은 몇몇 공항에서 짐이 연결편까지 바로 옮겨진다 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은 환승시 일단 짐을 다 빼고 다시 보내야했다. 그 말인즉 나 혼자 150kg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옮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입국 심사는 의외로 수월했다. 사람이 붐벼 오랜시간 기다려야했지만, 아이들이 있었던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이때까지 미국 입국 했던 것 중에서 가장 친절한 입국 심사를 경험했다. 1년 동안 좋은 시간 보내라는 인사에 아이들도 잔뜩 경직됐던 표정을 풀 수 있었다.
이제 대망의 짐 옮기기 시간. 일단 어린이들에게 기내 짐들을 모두 맡겨두고 잠시 기다려라! 하고선, 포터를 찾기 시작. 이미 다른 사람들이 먼저 차지해버린 경우가 많았지만, 저 끝에 빈 카트와 서 계신 키 큰 분 한명을 발견! 나 좀 도와달라며 뛰어갔다.
"이것도 내 짐이고 이것도 내 짐이야..총 6개고. 잠시만!! 나 이제 우리 애들 좀 데려올게" 엄마가 안와서 동공지진 중이던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땀범벅이 된 채 포터 아저씨와 세관을 통과하고 짐 다시 부치기에 성공. 연신 땡큐를 외치며 헤어졌다. 실제론 5분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30달러를 소비하기에 충분히 가치있었다.
환승 검색대에서 기내 캐리어 속에 있던 블루투스 키보드를 깜박하는 바람에 짐을 여는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 트레인을 타고 터미널을 이동했고, 델타항공의 '롤리 더럼'행 전광판을 보고서야 드디어 안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아이들의 미국 첫끼는 버거와 감자튀김으로 대체했다. 칙필레라도 먹여보려 했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 결국 이름도 모르는 버거 가게에서 주문했는데, 여정의 끝이 보인다는 사실에 그저 기쁘게 먹었다.
이어진 국내선 비행. 1시간 20분동안 아이들은 꿈나라에 가고, 나는 기내 와이파이를 누리며 휴식! 비행기에서 내려 각자 짐을 부지런히 들고 걸어나가니 "Welcome to North Carolina's Research Triangle Region" 이란 글자가 보인다.
비로소, 왔다.
#NorthCarolina #노스캐롤라이나 #하하남매 #1년살기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