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잠시' 살았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정확히 1년 7개월을 살아봤다. 돌이켜보면 즐거웠던 기억이 절반, 서바이벌을 방불케 한 고단함이 절반이었다.
단기간 미국살이를 기록한 글들은 대개 알찬 여행기와 근사한 일상으로 가득하다. 나 역시 그 덕을 많이 보았지만, 막상 ‘외국인’이자 ‘이방인’으로서 시스템을 몰라 겪는 숱한 당황스러운 일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겪지 않았을 황당한 상황들 앞에서 진땀을 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넋두리를 실시간으로 듣던 친구가 "너 이 정도면 미국살이 A to Z를 써도 되겠다"라며 농담 반 진담 반 건넨 말이 마음에 남았다. 겨우 1년 남짓 머문 이가 아는 체를 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좌충우돌의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지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매 순간 '당황하지 말자'를 주문처럼 되뇌며 꾸역꾸역 헤쳐나갔던 시간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이 낯선 고생을 사서 고생했을까.
누구나 짐작하듯 우리 가족의 해외살이 역시 아이들을 향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이들 영어 때문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명쾌하게 고개를 끄덕이진 못했다. 한국에는 이미 영어 유치원부터 체계적인 학원 커리큘럼까지, 아이들이 영어를 더 유창하게 배울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니까.
우리가 바란 것은 언어 그 이상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사고가 굳어지고, 획일화된 '옳음' 안에서 타인에 대한 배척을 배우기 시작하는 모습을 문득 마주했을 때, 더 늦기 전에 그 틀을 깨 주고 싶었다. 20대에 홀로 떠났던 호주 어학연수 시절,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마주하며 타인의 시선과 속도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내 경험처럼 말이다.
어른에게도 벅찬 이방인의 삶이 아이들에게 쉽지 않았을 것을 안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보낸 1년 여의 시간이 아이들의 내면에 단단한 뿌리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이 투박하고 엉성한 기록은 내 나름의 치열했던 성장기이자, 아이들에게 보내는 가장 진심 어린 응원이다.
그저 너희의 삶에 경계가 없기를. 언어가, 문화가 장벽이 되지 않기를. 다름이 낯설 순 있어도 틀린 것이 아님을 몸으로 배우기를. 더불어 사는 삶의 진짜 가치를 깨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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