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같은 비상계엄령, 수습기자 생활도 뒤집혔다
창원역에 도착하니 여긴 아직 가을이었다. 마와리를 돌던 수습기자 시절 창원의 TF 취재에 투입됐다. 눈 내린 서울 거리에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따뜻한 창원에 오니 기자가 됐다는 게 또 실감 났다. 이렇게 아무 때나 갑작스럽게 준비 없이 타 지역으로 보내지다니! 겨울이었지만 낯설고도 설렌 가을이었다.
타사에게 물 먹지 않도록, 즉 타사에 단독 보도를 내주지 않기 위해 '주요 취재원'을 집중 마킹하는 게 내게 주어진 일이었다. 주말에 창원에 있다 주중 다시 서울로 오기도 하고, 한 번에 일주일 이상 창원에 머무르기도 했다. 언제까지 있을지 기약 없이 다녔으므로 최소한의 짐을 싸는 요령이 생겼다. 속옷은 사흘 치, 내의와 상하의는 두벌 씩, 겉옷은 하나만 있으면 겨울을 이럭저럭 버틸 수 있더라. 매일 호텔에서 손빨래를 하며 내일의 지시를 기다렸다.
관련 보도가 쏟아지던 시점이라 이곳의 일 역시 긴박하게 돌아갔다. 어느 날 점심에 선배가 밥을 사주시겠다고 했다. 식당에 먼저 와서 선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시청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선배는 식당에 오지 못하고 취재를 하러 가셨다. 그러곤 감사하게도 배달어플 금액권 쿠폰을 보내주셨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시켜 먹으라'는 센스 있는 멘트와 함께.
어느 날 밤엔 내가 맡았던 그 '주요 취재원'과 술을 마셨다. 타사 기자들도 우르르 함께였다. 저녁 겸 시작된 술자리는 적당한 시간에 끝났다. 숙소 인근에 도착하니 저녁 10시 무렵이었다. 창원시내 곳곳에서 노란 전구가 연말을 반짝반짝 장식하고 있었다. 보통 어떤 자리든 잘 먹는 편이지만, 식사자리에서 내내 그 취재원의 멘트에 신경 쓰느라 많이 먹지 못했고 술까지 들어가자 더 허기가 졌다.
삼각김밥 같은 걸 간단히 더 먹고 선배가 보내주신 기프티콘으로 요거트 아이스크림도 주문해 해장 겸 먹을 생각이었다. 꽤나 신났다. 이 시간에 대통령이 갑자기 긴급회담을 한다고도 해서, 뭘까, 핸드폰을 가로로 들고 라이브 방송을 보며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회사 단톡방에서 선배들은 예산안 관련 회견 정도로 예측하는 분위기였다. 2024년 12월 3일 10시 23분.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저런 말을, 대통령이, 라이브로? 이게 무슨 회담인가 싶었다. 뭐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불길함이 엄습하던 때,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멍하니 얼어붙었다.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시간이 이상하게 흘렀다, 편의점 내부를 둘러보았다, 계속 밝은 이곳, 계산대에 팔을 올려놓고 무덤덤하게 핸드폰 화면을 스크롤하고 있는 직원 한 명, 술을 고르는 커플 한 쌍, 냉장 코너 앞을 서성이는 여성 한 명, 막 왁자지껄하게 들어오는 젊은 남성 무리, 모두 너무 태연했다, 내 머릿속에선 커다란 사이렌이 '에에엥-' 요란히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아무나 붙잡고 주저앉고 싶었다. 지금 대통령이 계엄 선포한 거 보셨어요? 저희 어떡하죠?
편의점에서 마구잡이로 결제하고 나와선 작은 트리 앞에서도 멍하니 있었다. 트리 꼭대기의 별이 제대로 반짝반짝하질 못하고 불안정하게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봉지 속을 뒤져 포카리 한 캔을 꺼내 들이켰다.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카톡이 난리가 났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단톡방을 와다다 만들기 시작했다. 창원 TF팀에서는 아직 아무 연락 없었다. 일단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각 방송사의 특보가 시작됐다. 모든 전자기기를 동원해 우리 회사 포함 4개사 특보를 동시에 틀어놨다. 이후 본 장면들은 더 비현실적이었다. 국회에 군인이 들이닥쳤다. 버스를 타고 오고 헬기를 타고 왔다. 시민들과 기자들도 몰려들었다. 내 동기들도 국회 안에 들어갔단다... 걱정이 태산이다. 경찰이 국회 출입을 통제했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 계엄군이 창을 깨고 진입을 하고... 아 어떡하지. 국회에 있는 동기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계속 알려주었다. 제정신이었을까.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였고, 날을 넘겨 새벽 1시가 되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한시름 놓았다. 창원에 있던 선배께도 연락을 받았다. 팀에서 내 거취에 대해 아직 따로 말하지 않았으니 내일도 평시처럼 그 취재원에게 붙으면 된다는 지시였다. 이제 마음 좀 놓고 쉬라는 말씀이었지만 다들 밤샜다. 대통령은 오전 4시 30분이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고 계엄을 공식 해제했다. 그의 얼굴도, 피곤해 보였다.
계엄을 겪어본 세대도 그렇지 않은 시민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던 벼락같은 사건. 기자가 되고 나서, 삶에서 겪지 않아야 더 좋았을 것 같은 일들을 몇몇 겪었다. 최악은 뭐니 뭐니 해도 계엄령이었다.
다시 겨울의 서울로 올라왔다. 쉬는 날 없이 연속 16일을 근무한 상태였지만 당연히 계엄 정국보다 급한 건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정국을 맞닥트리며 마와리도 갑자기 끝나버렸다. 긴긴 뻗치기와 각종 시위 취재 그리고 간혹 어려운 취재에 대한 지원이 맞물렸다.
선배와 현장에 나갔다가 발로 뛰어 뭘 알아낸 적 있다. 알아낸 걸 확인하기 위해 무서웠던 현장도 갔다. 큰 보도였다. 하지만 이걸로 입봉을 하지 못했다(후배가 들어오고 알게 된 건 시기적으로 이때도 입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계엄정국의 주요 보도로 나갔다. 그날 현장에 함께했던 선배를 비롯해 팀 선배들은 관련 보도들로 사내외 상을 우르르르 받았다. 나는 어디에도 없이 잊혀졌다. 수습이라 상신이 안 된다 했다(후배가 들어오고 알게 된 건 수습도 상신이 된다는 것이다). 숱한 수상 후기에 이름 한 번, 적어도 '현장에서 함께한 수습기자'로도 명시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선배들은 수습도 인턴도 수상후기로라도 챙겨줬더랬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많이 많이 쓰린 기억이다.
뻗치기는 기본 10시간이었다. 그때 기자들은 다 그랬다. 그러다 어떤 날 아침, 지시에 따라 도착한 장소에서 아직 아무 소득 없이 뻗치기를 하며 아무도 답하지 않는 중간보고를 계속 혼자 올리던 때. 전화 한 통이 왔다. 수습이 해제되기 직전 내가 다른 부서로 배치될 거란 전화였다.
보통 기자는 저연차 때 슬롯부에서 경험을 쌓는다. 마와리가 끝나고 슬롯부에 남아 취재 기본과 감을 익힌다.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게 정설로 통한다. 내 오랜 꿈도 슬롯부 기자였다. 하지만 계엄 이후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려... 알 수 없는 어떤 일들에 의해 그냥 그렇게 딸깍하고 떠나야 했다.
비로소 입사 후 처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맷집이 있기는커녕 기본기도 엉성하던 때, 이게 다 저주 같았다.
글: 블루버드
사진: 블루버드
그림: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