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정병발사대
"나 오늘 나가사끼 짬뽕에 우동사리 추가해서 먹고 싶어."
"그래 그래."
"얘들아 혹시 오돌뼈는 어때?"
"먹자. 주먹밥도 추가하자."
"문어 가라아게 어떨까?"
"맛있겠다 좋아 좋아."
"치킨 가라아게도 하면 너무 겹치나?"
"시켜 시켜."
"그래 그럼 '고탑' 두 개에 방금 말한 것들까지 해서 주문할게~"
만났다 하면 17만원 쓰는 모임. 나의 입사 동기 모임이다. 7명이 편의점을 가도, 5명이 밥 먹고 맥주를 마셔도, 4명이 하이볼을 먹으러 가도, 희한하게도 17만원 정도씩 먹고 쓰고 온다.
이런 과소비의 기반에는 서로에 대한 무한한 지지와 응원이 있다. 식탐의 영역에서도 유효한 거다. 내가 너무 많이 시켰나? 고민하면, 1) 여기 여자가 많으니 호르몬 영향 고려하면 그다지 많이 시킨 것도 아니다. 2) 입이 이렇게 많으니 다 먹을 수 있다. 등의 멘트로 지지해 주는. 그리고 실제로 다 먹고 마시는 왕성한 욕구를 가진!
위의 대화에서 아무도 언급 안 했는데 당연하게 등장한 '고탑'은 무엇인가. 우리 동기들은 우르르 만날 때 무조건 룸이 있는 식당으로 갔다. 알고 보니 기자는 이 세상 어디에나 있었기에 듣는 귀를 피해야 했다. 온갖 욕과 한탄을 속 시원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닫힌 방 행이다. 우리가 특히 자주 가던 룸 이자카야에는 고구마 요리가 있다. 이걸 시키면 두툼한 고구마 스틱을 튀겨 우물정자 모양으로 탑을 쌓아 준다. 같이 주는 허니버터를 발라서 먹으면, 달고 따끈하고 고소하고 포근포근하면서 버터는 또 차갑고 촉촉하고... 그냥 미치는 거다.
이 회사 기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입사 전형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서로서로 이미 얼굴을 봤고 누군가와는 대화를 나눴고 누군가와는 면접을 함께 들어갔고 면접 전에 간식도 나눠 먹었고, 하여간 입사 전부터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 내가 합격했다는 채용공지에서 이 친구들의 이름을 보곤 같이 합격했다는 사실에 또 설렜었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던데. 우린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입사 후 마주한 우리의 사랑은 전우애였다. 공들여 쌓은 '취뽀'라는 탑, 사실 취뽀라는 개념보다 좀 더 거대했던, '기자'가 되고 싶다는 묵은 간절함. 이 직업을 가져서, 슬롯에서 이 역할이 되어서 뭘 하고 싶다고 꿈꿔왔던 그게 막상 우리 손에 주어졌는데, 꿈을 이뤘는데, 매일 사무치게 괴로웠다. 각자의 탑을 높이 쌓아 결국 고점에서 만난 우리는 매일 비슷한 이유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일이 이게 맞아? 이런 이유로 혼나는 게 맞아? 그 사람은 왜 그랬지? 근데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하지? 나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 대체 나는 왜 뽑힌 걸까? 나는 기자를 못할 것 같아... 큰 트럭에 갑자기 치이면 많이 아플까?...
마와리를 처음 돌기 전, 우린 모두가 함께한 워크숍에서 모여 앉아 서로에 대한 칭찬 릴레이를 했다. 감도 높은 한 동기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마와리를 돌고 취재를 시작하면 자존감이 많이 무너진대. 지금이라도 조금 더 튼튼하게 쌓아두자, 혼자 스스로 칭찬하는 것보다 남이 진지하게 칭찬해 준 게 더 신빙성이 있고 오래 남지 않을까? (사실 이때 님들이 해준 칭찬 중에 '너는 음잘알이고 네 락 취향은 맛도리다' 이거밖에 기억 안 남)
이때부터 서로 전적으로 지지하기로 한 우리라서. 그냥 각자의 탑을 무너질 때 함께 모여 무너트리기에 이르렀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게 너무 힘든데 좋아한다고 착각해서 기자가 됐어. 멍청하게도. 나는 그냥 최선을 다한 건데 알려주지도 않았으면서 화부터 내는 걸 못 참겠어. 나는 진짜 기자가 안 맞아. 나도 나도. 나는 무능해. 아냐 너는 이런 이유로 유능하고, 내가 진짜 무능해. 나는 그 사람을 저주해. 응 함께 저주해. 널 괴롭힌 그 사람을 영원히 싫어하자. 나는 요즘 감정이 회색이 되어버린 것 같아. 더 이상 삶 속에서 기쁨이 안 느껴져... 기자 하지 말라던 선배들의 조언은 기만이 아니었나봐.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같이 톺아보자. 그래 그래, 좋아 좋아. 술 더 시킬게. 응응! 쟤 또 운다. 웃기다. 쟤도 같이 운다. 사진 찍어두자. 너네는 싸패야.
함께 무너트린 고구마 탑이 많아질수록 돈독해졌더랬다. 보듬어도 어쩔 수 없이 피가 죽죽 나 쓰린 마음들이었다. 슬롯초년생의 고통이기도 했고, 간절했던 꿈을 정말 어렵게 이룬 뒤 더 크게 몰려온 충격이었다. 남들보다 많이 울진 않았으나 먹고 마시는 거로 다 풀었다. 사실 풀리진 않았다. 6개월 만에 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해 옷들을 새로 사야 했고 더더욱 괴로워졌을 뿐...
입사할 때 그 모습 그대로, 그 몸무게와 그 마음가짐과 심리 상태로, 원상 복구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이걸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과 노력이 고통스럽게 들었다. 성장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상처일까.
글: 블루버드
그림: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