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고객님]

스무고개 게임을 아시나요?

by태고

" 안 쓴 항공권 환불받아 가라 해서 전화했는데요. "


아 그러세요 고객님?

본인 확인 후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예약 시 등록하신 연락처가 어떻게 되실까요?


010 3878 555...


아닙니다


그럼 010 2222 5666?


아닙니다.


고객센터에서는 본인확인을 위한 질문을 한다. 대면하여 얼굴을 보고 처리해 드리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인 것이다.



고객님이 남긴 번호는 070 번호였다. 인터넷 전화번호를 남긴 것이다.

1년 전에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어떤 번호를 남겼는지 기억이 날 리 만무하다.

글쓴이라도 모를 것이다. 나는 어제 먹은 점심도 가끔 잊어버린다.


하지만 개인정보가 통과되지 않으면 상담을 진행해 드릴 수가 없다. 고객은 회사에서 일하다가 짬을 내 전화한 모양인지, 바쁘게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옆자리에선 업무적인 대화 내용이 들린다.


" 아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진짜.. "


10분을 대기하다 연결된 고객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통화는 길어진다

본인이 전화했는데 '본인확인'이 안 된다니 미칠 노릇이다.



상담원들은 한 달에 한 번 모니터링이라는 시험을 치른다.

한 달 동안 통화한 녹취록 중에 관리자가 무작위로 하나를 골라 듣고 평가하는, 일종의 업무평가인 샘이다.


녹취에서 고객의 정보를 상담원이 먼저 언급을 하면 감점이 된다. 본인확인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감점을 무릅쓰고 혼잣말을 하듯 작게 흘린다. 상담원도 사람이다. 나도 가끔 " 힌트 요정 "이 되고 싶다.


" (작게) 핸드폰 번호가 아니신 거 같은데.... "


눈치 빠른 고객님들은 여기서 상황을 캐치한다.


아. 인터넷 전화구나. 070 -1234-5678!!


감사합니다.

상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객님과 나의 스무 고개가 끝났다.




카드 회사 고객센터에 다닐 때였다.


" 안녕하세요, 고객님 현재 카드론 이자율이 11%로 내려갔습니다. "

18.9%의 이자로 카드 대출을 이용 중 이신 고객님이다.


" 11% 이자율로 한도 500만 원까지 이용이 가능하세요, 고객님 "


" 필요 없어요. "


상담원은 당사에서 높은 이자로 이용 중인 대출을,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타라는 언급을 할 수 없다.

그냥 두면 회사가 이자를 더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고객에게 이자가 낮아졌음을 알려주어서 기업의 이득을 낮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객님... 예를 들어서, 다른..(작게) 카드사 대출을 더 비싼 이자로 쓰고 계시다면,

그걸 먼저 갚는 데 쓰실 수 있어요. 그러면 이자가 줄고, 아낀 돈만큼 원금을 더 갚을 수 있으니 빚도 더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든 것이 아니다. 타사 얘기가 아닌 지금 당사에 쓰고 있는 대출을 갚을 수 있다는 말을 에둘러 하는 것이다. 사실은 정답을 알려주는 중이다.


" 아, 입금해 주세요. "



고객님이 눈치를 챘다.

띵동~

고객이 앞전에 쓰던 카드론을 전액 상환했다. 그의 이자율은 11%로 바뀌었다.

오늘도 고객님과 한 판의 스무 고개 상담이 끝났다.

정답은 늘 고객님의 입에서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