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싫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법

by그냥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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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공부하기 싫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법>


잔소리를 줄이면서 나에게 무언가를 시도해 볼 작은 시간이 생겼다. 바카라도 뒤적여 보고, 뜨개실로 수세미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약간의 내적 평안을 얻었을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맛볼 수는 없었다. 솔직히 엄마의 간섭이 없어진다고 해서 아이들이 자기 할 일을 척척 해낼 것이라 믿은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울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은 제각기 방에 들어가서 탈의를 한 후 거실로 모여들었다. 옷을 벗었으면 실내복으로 갈아입는 것이 당연하건만 그런 거추장스러움은 당연한 듯 패스해 버린다. 말 그대로 귀가는 곧 타잔으로의 변신 과정일 뿐이었다. 오전의 찰나와 같은 고요함은 이내 북적임으로 바뀌었다.


‘그래, 조금 쉬고 나면 시작하겠지.’


30분...


‘그래, 간식 먹고 나면 시작하겠지.’


1시간...


‘조금 있으면 저녁 먹을 때인데 양심 있으면 시작하겠지.’


하지만 그들은 양심이 없었다. 여전히 스스로에게 매우 너그러웠다. 시간의 흐름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 할아버지께 장기 두는 방법을 전수받은 이후 두 아이는 네모난 장기판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소리는 왜 또 이렇게 소란스러운지. 나의 기준에서 장기란 무릇 말을 옮기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게임이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조용해야 할 터인데 두 아이는 어마어마한 대화를 하면서 온몸으로 대국을 치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요란스럽게 말이다.


“어머, 벌써 해가 지고 있네! 이제 식사 준비 해야겠다. 할 것 다 한 어린이들과 웃으면서 저녁을 먹으면 되겠다. 그리곤 놀이터에 갔다 오면 오늘도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겠다.”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교과서를 읽듯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잔소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대놓고 뭐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시간을 어필할 필요는 있겠다 싶어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절대 소심한 반항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상냥한 안내 방송을 들은 아이들은 그제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본인들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위화감을 느꼈겠지. 그렇게 엉덩이를 떼고 움직이나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엄마, 아까 학교에서 손가락을 다쳤어요. 그래서 바카라을 펴는 게 힘들어요.”


둘째의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오늘 체육 시간에 무리했는지 다리가 너무 아프고 피곤해요.”


첫째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몇 시인데 학교에서의 일을 왜 이 순간 말하는 것인지 의도가 너무 빤했다. 그럼에도 나는 상냥한 엄마니까 다가가 확인했다. 종이에 베인 상처는 이미 밴드 안에서 치유가 끝나가고 있었다. 큰 아이의 다리를 몇 번 주물러 주었다. 그러곤 그것들이 아이들의 학습에 크게 지장이 없다는 것을 재차 알려주며 주방으로 되돌아왔다.


“엄마, 공부하기 싫어요.”

“엄마, 공부 왜 해야 해요?”


그래그래. 이쯤에서 당연히 나와야 할 대사였다. 공감과 격려. 각종 육아서에 필수로 나오는 부모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데일리 루틴처럼 벌어지는 패턴에 이제 입에서도 단내가 날 지경이다. 그리고 순간 어미의 잔머리가 발동되었다.


바카라장 구석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간 아이들이 사용하다 남은 공바카라들을 모아두었던 곳이었다. 뒤적이다 한 페이지씩만 사용했던 노트 두 권을 꺼내 들었다. 아이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았다. 자리에 착석한 아이들 앞에 준비해 온 공바카라의 앞 장을 펼친 후 내밀었다. 사용한 흔적은 미리 찢어버렸다. 비어있는 페이지에 빨간색 볼펜으로 주제를 적었다.


<주제 : 공부>


연필을 하나씩 건네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에 너네가 생각하는 불만을 전부 적어봐!”


공바카라과 연필의 조합으로 만난 아이들은 당연하게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미션 앞에서 그들의 불안을 줄여주었다.


“이건 공부가 아니야. 그냥 너네가 얼마나 공부를 싫어하는지 그 생각을 알고 싶어서 그래. 한 사람씩 엄마가 붙잡고 물어보면 내 눈을 보면서 제대로 말 못 할 거잖아.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 전부 다 써봐. 엄마가 그 글을 읽고 너네 마음을 제대로 알고 싶어. 단, 조건은 욕설 금지!”


마지막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크게 웃었다. 어느 정도 긴장감이 풀어졌다는 증거였다. 혹시 글을 쓰는 중간에 엄마 눈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다 쓸 때까지 자리를 피해 주었다. 안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는 순간 거실에서는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그것은 투덜거림이 아닌 저마다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하는 귀여운 소음이었다.


“우리 이거 엄청 잘 쓰면 엄마를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방문 너머로 큰 그림을 그리는 첫째의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아들아, 내가 니 머리 꼭대기에 있다!’


아무리 잘 썼다 할지라도 초등 1학년과 4학년의 글재주로는 당연히 나를 설득할 수 없다. 더욱이 이참에 글쓰기 연습을 시키려는 나의 그림이 더욱 컸다. 그간 글쓰기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고 연습을 시키려고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차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아주 좋은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을 꼬맹이들은 알 수 없었다.


똑, 똑, 똑


약 15분 정도가 흘렀고,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내 열린 문틈 사이로 말간 두 얼굴이 동동 떠올랐다.


“엄마, 다 했어요!”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했다. 거실로 나가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두 아이의 첫 작품을 마주했다.



고작 몇 줄을 겨우 채울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제법 글쓰기를 한 흔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스타일로 속내를 풀어냈다.


큰아이는 글을 쓰게 된 원인과, 싫은 이유를 첫째, 둘째, 셋째로 구분 지어 이야기했다.


1. 따분하고 지루해서

2. 상상력 때문에

3. 글쓰기가 싫다

게다가 엄마를 설득해서 며칠이라도 놀아버리고 싶다며 거침없이 표현했다.


막내는 그동안 동화바카라과 오빠의 학습만화를 함께 보아서 그런지 말투가 재미있었다. 그 와중에 검은색 크레파스로 자신의 마음을 그려낸 것이 일품이었다.


물론 두 아이 모두 띄어쓰기, 맞춤법 등 전반적으로 엉망이었으나 그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공을 들여 속내를 끄집어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기대를 웃돌았다. 읽는 입장에서도, 엄마로서도 얼마나 기특한지 감동해 버렸다. 절대 그럴 리 없을 것이라 단정했던 나의 마음이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다 쓰니까 어땠어?”


첫째 : “생각보다 후련했어요.”

둘째 : “재미있었어요.”


“혹시, 우리 다음에도 가끔씩 이런 거 또 해보면 어떨까?, TV가 왜 좋은지, 저녁에 외식을 해야 하는 이유 같은 걸로...?”


정말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흔쾌히 ‘좋아요’를 외쳐 주었다. ‘무조건 해!’라는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서로 상처만 남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공부라는 분위기의 강압이 아닌 최대한 마음을 알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한 것이 다행이었다. 엄한 얼굴이 아닌 상냥함을 장착해서 다행이었다. 비록 엄마의 사심이 가득 담긴 미션이었으나 적어도 나의 목적을 이루면서도 아이들 또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공부는 재미없다는 것을. 공부는 하기 싫다는 것을. 그러나 그 과정을 전부 거쳐온 나는 또한 알고 있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우리 집에서는 전교 1등을 목표로 학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앞으로 무수한 장벽을 앞에 두고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에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킬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싫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시키는 것 또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오늘처럼 스스로 재미있다 여겨지는 포인트에서 시작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 어려운 출발의 발걸음이 작게나마 가벼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미 흔들려버린 마음은 기특한 아이들에게 보상으로 답했다.


“오늘은 모든 공부를 바카라 읽기로 통합한다!”


뒤이어 두 꼬맹이의 함성이 들려왔다.



T 성향의 엄마로서 아이가 공부가 싫다고 할 때면 언제나 난감하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 있는 이 방법이 맞는 길인지 매 순간이 흔들리기도 한다.


과연 나만 그런 것일까?


아이의 마음을 보는 것도 맞고, 해야 하는 것은 단호하게 가야 하는 것도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님들은 어떻게 하시나요? 매번 단호하게 못하는 것은 정말 저 혼자일 뿐인가요?'


오늘도 나는 그 갈등 속에서 하염없이 헤엄을 치고 있을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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