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과 비관 사이에
시스템을 세우는 법

2026 All-Day-Project (264/365)

byJamin

깔끔한 회고일수록 의심하라 에 이어서 생각하기


회의주의의 원칙: 낙관과 비관 사이에 시스템을 세우는 법


나는 최근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시리즈의 일환으로 회고에 관한 글을 썼다. 경험을 돌아보는 습관을 권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서 한 가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회고 자체도 결국은 어떤 태도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낙관적으로 돌아볼지, 비관적으로 돌아볼지. 그 선택이 결과를 좌우한다.


그래서 이 글은 일종의 보론이다. 이전 글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회고 너머의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일하고 판단해야 하는가.


내가 이전 글에서 든 사례가 하나 있다. 도현이라는 개발자의 이야기였다. 금요일 저녁, 그는 주간 회고를 적었다. 결제 모듈 개발이 사흘 걸렸고, 원인은 코드 리뷰 요청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깔끔했다. 통찰을 얻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3주 전에 적어둔 기록을 우연히 펼쳐봤다는 점이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결제 모듈, 하루면 충분." 같은 일, 같은 예측, 같은 실패. 그런데 금요일의 회고는 자신이 처음부터 3배나 저평가했다는 사실을 통째로 빼먹었다. 리뷰 요청이 차지한 시간은 사흘 중 반나절뿐이었다. 나머지 이틀 반은 깔끔한 이야기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사례를 쓰면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회고를 너무 맹신한다는 것을. 결과를 안 뒤에 과거를 돌아보면 원인이 뻔하고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사후확신 편향이라 부른다. 뇌는 결과로 이어지는 인과 사슬을 자동으로 만들고, 자신이 원래부터 그걸 알았다고 믿는다.


여기서 나는 자주 떠올리는 비유가 있다. "낙관주의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주의자는 낙하산을 만든다."


낙관은 이륙의 용기다. 월요일에 "하루면 충분해"라고 예측하는 순간, 우리는 비행기를 설계하는 것이다. 비관은 착륙의 준비다. 금요일에 "어디서 터졌을까"를 점검하는 순간, 우리는 낙하산을 정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을 경쟁 관계로 여긴다. "나는 낙관론자야" 또는 "나는 비관론자가 더 현실적이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비행기와 낙하산은 같은 기체에 실려 있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승객은 위험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태도를 믿지 말고, 시스템을 믿어야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회의주의가 등장한다. 회의주의는 부정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낙관과 비관 모두를 의심하는 경계의 자세다. 낙관이 너무 쉽게 비행기를 띄우려 할 때, 회의주의는 "너의 설계도는 검증됐느냐"고 묻는다. 비관이 너무 자주 낙하산을 펼치려 할 때, 회의주의는 "이게 진짜 위험인가, 아니면 그냥 노이즈인가"라고 묻는다.


이 회의주의는 시스템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감정이나 성향이 아닌, 구조와 원칙으로 말이다.


첫 번째 원칙은 예측을 기록하라는 것이다. 월요일에 숫자와 가장 불확실한 부분을 적어라. 이것은 당신의 낙관을 객관화한다. 금요일에는 '왜'가 아니라 '무엇이 예상과 달랐나'를 물어라. 인과 이야기는 지어내기 쉽지만, 예측과 현실의 격차는 지어내기 어렵다.


두 번째 원칙은 노이즈에 손대지 말라는 것이다. 나쁜 한 주는 관찰만 하고 넘어가라. 같은 패턴이 3주 이상 반복될 때, 그때 비로소 시스템을 바꿔라. 매주 바꾸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탬퍼링이다. 품질 관리의 대가 에드워즈 데밍은 이렇게 말했다.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프로세스를 일상적 변동에 맞춰 자꾸 건드리면 오히려 더 나빠진다고.


세 번째 원칙은 교훈을 결론이 아닌 가설로 쥐라는 것이다. '다음 주 실험'은 증명된 진리가 아니라 검증할 베팅이다. 맞은 것 같을 때도, 그게 사후확신은 아닌지 한 번 더 의심하라.


네 번째 원칙은 낙관과 비관을 분업하라는 것이다. 낙관으로 밀고, 비관으로 점검하라. 하지만 최종 판단은 기분이 아니라 기록에 맡겨라. 낙관은 비행기의 연료이고, 비관은 낙하산의 끈이다. 하지만 조종석의 계기판은 따로 있어야 한다. 그 계기판은 월요일에 적은 숫자와 3주간의 반복이다.


도현은 그 뒤로 월요일마다 한 줄을 적는다. 금요일의 회고는 예전보다 덜 깔끔해졌고 더 불편해졌다. 범인이 '리뷰 요청'에서 '내 저평가 습관'으로 자주 바뀌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누구나 낙관론자이자 비관론자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질 뿐이다. 문제는 그 태도들이 우리의 판단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회의주의는 그 인식의 출발점이다.


회의주의는 결정을 미루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장치다. 자신이 낙관에 빠졌을 때는 비관의 시선을, 비관에 빠졌을 때는 낙관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을 기록이라는 바닥에 받쳐놓고 검증하는 것이다.


깔끔한 답은 질문을 죽인다. 불편한 기록은 질문을 살린다. 나는 이제 어떤 판단을 내릴 때마다 이렇게 묻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너무 깔끔하다면, 내가 무엇을 빼먹은 건 아닐까. 비행기가 잘 뜨는 것도 좋고, 낙하산이 잘 펼쳐지는 것도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둘 중 무엇이 잘못됐을 때 그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장치다.


그 장치만 있다면, 낙관도 비관도 우리를 망치지 않는다. 그저 데이터가 될 뿐이다.


돌아보면 배운다는 말을 내려놓자. 대신 이렇게 말하자. 내다본 게 있어야, 돌아보는 게 배움이 된다.

그리고 그 내다보는 행위조차 의심할 줄 아는 태도가, 진짜 시스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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