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263/365)
요즘 나는 내가 쓰는 글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글을 '공장 제품'과 '수제품' 사이에서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AI가 내 문장을 깔끔하게 다듬어줄 때마다, 나는 그 깔끔함 속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듯한 허기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불완전함을 넣고, 일부러 수식어를 흐트러뜨리고, 내 삶의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끼워 넣었다. 그게 바로 '인간의 흔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유 자체가 이미 오염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누군가와의 대화에서였다.
AI는 공장이다. 포디즘(Fordism)의 그것처럼, 표준화된 언어를 대량 생산하고, 문법적 결함을 제거하며, 논리적 구조를 일정한 템플릿에 맞춰 찍어낸다. 이 공장이 생산하는 텍스트는 평균적으로 '괜찮다'. 어쩌면 인간의 평균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오타도 없고, 문장은 매끄럽고, 결론은 명확하다.
그러면 우리는 이 공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말한다. "Human-made"라는 라벨을 붙이자. 법으로, 기술로, 워터마크로, 아니면 블록체인이라는 영원한 원장에 그 흔적을 새기자. 마치 에르메스 가방에 장인의 서명이 찍히는 것처럼, 인간이 쓴 글에도 특별한 인증을 남기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가 터진다. 수제가 귀족화되는 순간, 그 수제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재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장 제품을 소비하고, 소수만이 '진짜 인간의 땀방울'이 묻은 글을 향유하는 계층 구조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AI가 가져온 '글쓰기의 민주화'라는 명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더 나쁜 소식은, 공장은 무한히 학습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간다움'의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법이나 기술로 보호하려 할수록, AI는 그 기준을 더 정교하게 모방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진짜 인간의 글'이 일부러 오타를 넣는다면, AI는 의도적으로 오타를 생성한다.
'진짜 인간의 글'이 개인적 에피소드와 감정적 비약을 포함한다면, AI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적절한 사연을 찾아 삽입한다.
'진짜 인간의 글'이 논리적 비약이나 모순을 감추지 않는다면, AI는 그 모순을 시뮬레이션한다.
이것은 마치 위조 명품 공장이 정품 감별사를 고용해 자신들의 제품을 평가하게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진짜'를 보호하려는 장치를 만들면 만들수록, '가짜'는 더 완벽한 진짜 흉내를 낸다.
그리고 여기서 더 깊은 역설이 도사린다. 우리가 'Human-made'라고 인증한 글도, 사실은 평생 읽은 바카라, 본 영화, 들은 대화, 그리고 이미 AI를 통해 접한 수많은 정보들의 재조합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내가 '순수하게 내 것'이라고 믿는 생각조차,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수제' 인증은 과연 무엇을 증명하는가?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지식 노동의 결과물에도 COO(Certificate of Origin)가 찍히는 세상은 어떨까? 내가 쓴 글이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되었는지, 블록체인처럼 투명하고 위변조 불가능한 원장에 기록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오면, 적어도 몇 가지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자가잠식(Model Collapse): AI가 스스로 만들어낸 데이터를 다시 학습하며 품질이 퇴화하는 현상. COO가 있다면 학습 데이터셋에서 'AI 생성' 레이블이 붙은 데이터를 필터링하거나 가중치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허위정보의 추적성: 가짜뉴스가 누구(혹은 어떤 AI)에 의해 최초 생성되었는지 역추적할 수 있다면, 바카라임 소재를 묻는 것이 용이해진다.
지적 재산권의 자동화: 내 글이 타 AI의 학습 데이터로 쓰일 때, 스마트 컨트랙트가 자동으로 마이크로 페이먼트를 지급하는 구조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완벽한 원장'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생각의 기원(Origin)은 과연 기록 가능한가? 내가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어제 읽은 바카라, 아침에 들은 팟캐스트, 10년 전 겪은 실패가 모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기록할 수 있는 건 '최종 출력물'과 '직접 인용한 레퍼런스'뿐이다. 내 무의식에서 스며나온 통찰의 COO는 어떻게 찍을까?
모든 아이디어는 거대한 영향의 그물 속에서 태어난다. 이 복잡한 '영향의 생태계'를 블록체인이라는 단순한 원장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지식을 마치 포장 가능한 컨테이너 박스처럼 격하시키는 것이 아닐까?
19세기,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 화가들은 혼란스러웠다.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그림의 영혼을 죽인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그런데 역사는 그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진은 그림을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인상파와 추상미술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사진이 '재현'을 대신하게 되자, 인류는 '재현'에서 해방되어 '표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기라는 '재현의 공장'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초상화를 더 이상 화가에게 의뢰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이 초상화는 사진기가 찍은 것입니다"라고 워터마크를 강제했던가? 그렇지 않다. 시장이 자연스럽게 사진은 '기록'으로, 그림은 '표현'으로 분화되었고, 그림은 더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방향으로 진화했다.
지금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AI라는 '언어의 공장'이 '정보의 재현'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은 '재현'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표현'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사진기와 AI의 결정적 차이는, 사진기는 스스로 학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기는 고정된 렌즈와 필름이었고, 화가들은 그에 맞춰 자신의 영역을 재정의했다. 하지만 AI는 무한히 진화하고, 우리의 모든 반응을 학습하며, 우리가 '인간다움'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흡수해 모방한다.
우리는 사진기 앞의 화가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에 서 있다. 공장이 단순히 대량 생산을 넘어, 수제 장인의 손길까지 모방하기 시작한 시대.
이 모든 혼란 속에서 나는 몇 가지를 붙잡고 있다.
첫째, 나는 여전히 내가 쓴 글이 내 삶의 흔적을 담고 있길 바란다. 그 흔적은 블록체인에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이다. 가령,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마신 커피의 쓴맛, 창밖을 스치는 바람 소리, 어제 누군가와 나눈 대화의 여운. 이런 것들은 데이터가 될 수 없지만, 내 글이 '내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둘째, 나는 도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도구에 복종하지 않으려 한다. AI가 나의 문법을 다듬는 것은 환영하지만, 내 생각의 방향을 결정하게 두지는 않는다. 공장이 내 옆에 있지만, 내가 공장의 지배를 받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다.
셋째, 나는 이 모든 논의가 '진짜'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슬롯적 합의의 과정임을 안다. 법도, 워터마크도, 블록체인도 그 합의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그 합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진기가 세상을 바꿨지만 그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AI가 글쓰기를 바꾸고 있지만, 인간의 글쓰기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 의미와 방식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진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잘 다듬어진 문장이 아닌, 덜 다듬어졌지만 내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무언가? 아니면 잘 다듬어졌으면서도 내 경험과 통찰이 배어 있는 무언가?
아마도 진짜는 그 어느 한쪽에 고정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진짜는 공장과 수제 사이, 규제와 자유 사이, 기술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협상되는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질문들을 붙잡고, 오늘도 한 문장을 쓴다. 그 문장이 공장 제품일지, 수제품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고민했다는 흔적은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은 인간과 AI의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어느 부분이 누구의 것인지는, 아마도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