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유용한 착각인가?

2026 All-Day-Project (196/365)

byJamin

피암시성에 관한 글 에 이어서 고민

피암시성 1: 네가 지금 읽고 있는 이 문장도, 암시일까?

피암시성 2: 외부의 것을 받아들인 나도, 나인가?


지금 오른손 검지를 한 번 까딱여 보라.


움직였는가. 좋다. 한 가지만 더 해보자. 조금 전 당신이 '움직이겠다'고 결정한 순간은 정확히 언제였는가. 손가락이 움직이기 직전이었는지, 움직이기 한참 전이었는지, 아니면 사실은 '결정한 순간'이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 딱히 없었는지.


이 이상한 질문은 1983년에 실제 실험실에서 측정되었다.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벳은 피험자를 의자에 앉히고, 시계 같은 화면 앞에 놓았다. 화면에서 점이 빙빙 돈다. 피험자는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을 때 마음대로 움직인다. 대신 한 가지를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 '움직이겠다'고 느낀 순간에 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리벳은 동시에 두 가지를 쟀다. 뇌의 전기 활동과, 실제 근육이 움직인 시점. 결과는 지금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뇌는 손가락이 움직이기 약 550밀리초 전부터 조용히 '준비전위'라는 파동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피험자가 '내가 움직이기로 했다'고 느낀 순간은 움직임 200밀리초 전이었다. 그 사이 350밀리초의 공백. 뇌가 먼저 결정하고, 의식은 뒤늦게 통보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간격이다.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나는 조금 서운했다. 2편에서 힘들게 세운 '다이얼로서의 주체성'이 여기서 뒤에서 걷어차이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결정했다'고 느끼는 그 장면이, 사실은 뇌가 반 초 전에 끝낸 일을 뒤늦게 보고받는 사후 회의에 불과하다면.


그런데 정작 이 실험을 한 리벳 본인은, 자유의지를 폐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상한 각도를 붙잡았다. 뇌가 준비를 시작하더라도, 손가락이 실제로 움직이기 직전의 그 짧은 창에서 의식은 '아니, 하지 마'라고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걸 자유의지(Free Will)가 아니라 자유거부(Free Won't)라고 불렀다. 시작을 고르는 건 어려울 수 있어도, 진행 중인 것을 멈추는 권한은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2편의 다이얼 비유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만 완전한 부자유도 아닌 중간 지대. 주체성은 '시작 버튼'에 있지 않고 '정지 버튼'에 있다는, 꽤 현실적인 그림이었다.


이야기는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0년이 지난 뒤, 신경과학자 애런 슈르거는 리벳의 실험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다시 읽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만약 뇌가 그 550밀리초 동안 '결정'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그냥 뇌에서 늘 출렁이는 신경 소음이, 어느 순간 우연히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뿐이라면?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던 동전이 어느 순간 툭, 떨어지는 것처럼.


슈르거의 모델에서는 '무의식적 결정'이 따로 일어날 필요가 없다. 그저 뇌가 늘 내고 있는 작은 신경 잡음이 있고, 그 잡음이 운 좋게 문턱을 넘는 순간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중에 움직임 시점을 기준으로 이 잡음을 거꾸로 평균 내면, 마치 뇌가 '의도적으로 준비'한 것처럼 보이는 완만한 곡선이 나타난다. 통계적 착시에 가깝다. 중요한 건, 이것이 리벳의 실험이 틀렸다는 주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데이터에,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입힌 것이다.


여기서 나는 또 한 번 조용해졌다. 한쪽은 "뇌가 먼저 결정한다"고 말하고, 다른 쪽은 "결정이라는 사건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같은 그래프를 놓고 말이다. 2021년에 나온 리벳 계열 연구들의 메타분석은 한마디로 이랬다. 패턴은 존재하지만 효과는 작고, 해석은 여전히 열려 있다. 자유의지에 대한 신경과학의 결론은, 아직 결론이 아니었다.


나는 이 혼란을 AI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자유의지가 있다는 증거도 없고, 없다는 증거도 확정적이지 않은 거네. 이걸 안고 어떻게 살라는 건가."


"결정론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선택하는 경험' 자체는 전략적으로 유용하다. 그 경험이 있어야 인간은 바카라임을 지고, 계획을 세우고, 관계를 유지한다. 자유의지는 물리적 실체라기보다, 잘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의 인터페이스에 가까울 수 있다. 그 인터페이스 아래에서 무엇이 진짜 돌아가고 있는지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출근하는 데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유용한 착각이라도 괜찮은 건가. 착각이라는 걸 알고 나서도 효력이 유지되나."

AI는 거기서 한 박자 쉬었다. "믿지 않으면서도 쓸 수 있는 개념이 있다. 지도는 실제 땅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도 없이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이 꽤 오래 남았다. 나는 자유의지가 '있느냐/없느냐'의 문제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질문의 형태를 바꿔야 한다. 이 개념을 어떤 태도로 쓸 것인가. 지도의 한계를 알면서도 지도를 펴는 사람처럼, 자유의지의 불확실성을 알면서도 선택하는 장면에 무게를 실을 것인가. 아니면 지도를 아예 덮어버리고 주저앉을 것인가.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오래전부터 리벳 실험의 시간 측정 자체가 모호하다고 지적해왔다. '움직이려 했던 순간' 같은 것은, 밀리초 단위로 고정되는 사건이라기보다 훨씬 느슨하게 뭉쳐 있는 경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비판을 덧붙이면 그림은 더 흐릿해진다. 깔끔하지 않지만, 깔끔하지 않은 쪽이 현실에 가깝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의 질문은 조금 짓궂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것은, 당신의 선택이었는가. 읽기로 결정한 순간을 짚을 수 있는가.

그 순간, 당신의 뇌는 이미 몇백 밀리초 전에 다음 줄을 향해 움직이고 있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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