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티오피아를 갔다. '봉사'라는 이름을 품고 떠나는 길이었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방문하며,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이미 일정은 정해져 있었다. 준비한 물품도 있었고, 내가 맡은 역할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주러 가는가?" 나는 단순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건네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시간과 능력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생각 그 자체에는 분명 선한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해서 언제나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인천을 떠나 두바이를 거쳐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길이었다. 두바이에서 다시 비행기에 올랐을 때, 에티오피아는 더 이상 지도 위의 먼 나라가 아니었다. 몇 시간 뒤면 실제로 발을 딛게 될 땅이었다.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내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그 좌석 위에 길게 드리워져, 빈자리가 유난히 밝았다. 나는 한참 그 자리를 보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내가 만나러 가는 사람들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들이 어떤 하루를 사는지,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는 준비해 온 것으로 봉사를 하려 했지만, 사진 속 빈 좌석처럼 내 안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리가 더 많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안다고 생각해서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구브리(Gubri)라는 봉사장소로 이동하였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구브리까지는 4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가는 동안 날이 밝았다. 낮은 지평선에 빛이 번지고, 옅은 주황빛으로 물들어 가는 새벽의 하늘을 보았다. 그 위로 두꺼운 구름이 길게 드리워졌다. 송전탑이 어두운 땅 위에 줄지어 서 있었고, 전선은 화면 끝까지 이어졌다. 나는 '전선만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실망이 그날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것 같다. 나는 오기 전부터 내 편견으로 에티오피아를 한 장면으로 정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가난, 척박한 땅, 손대지 않은 자연.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들으며 떠올린 그림이 있었다. 전선은 그 그림에 없던 것이라 거슬렸다.
하지만 철탑을 세우고 전선을 이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전기로 밥을 짓고 불을 켜는 집들이 있었다. 전선이 있다는 것은 이 땅의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전선은 마을과 마을을,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선이다. 여행자의 감동을 위해 준비된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장소이다. 내가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이 땅에는 이미 수많은 선이 이어져 있었다. 가족과 이웃, 마을과 도시, 노동과 신앙, 오래된 전통과 새로운 변화가 서로 닿아 있었다. 내가 에티오피아에 봉사를 온 이유는 끊어진 세상을 잇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있는 연결을 알아보고, 그 사이에 들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 속 멀리 있는 풍경은 또렷하다. 정작 가장 가까이 있던 전봇대만 차의 속도 때문에 길게 흔들려 있다. 멀리서 본 에티오피아에 대해서라면 나는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아는 것이 없었다. 흔들린 전봇대는 카메라의 실패가 아니라, 그날 내 시선이 남긴 가장 정직한 기록이었다. 에티오피아에 도착했지만 에티오피아에 대한 이해는 아니었다. 봉사의 땅에는 가까워졌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이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넓은 하늘과 텅 빈 운동장이었다. 하늘이 참 크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보던 하늘보다 훨씬 넓다고 느꼈다. 그러나 하늘이 커진 것은 아니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없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은 하늘이 아니라 내가 볼 수 있는 범위였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첫날 배운 것은 반대였다. 발견해야 할 것은 없던 것이 아니라, 늘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드넓은 운동장과 하나의 골대. 누군가 여기서 공을 차고 달렸다는 뜻이다. 어린 나무들도 저절로 자란 것이 아니다. 누군가 심고, 물을 주고, 자라기를 기다렸다는 뜻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삶은 이미 여기 있었다. 골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공도 없고 달리는 아이도 없었다. 그런데도 쓸모를 잃지 않았다. 나는 봉사를 위해 준비를 해서 온 사람이었다. 가방에는 나눠 줄 물건이 있었고, 일정표에는 우리가 할 일이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무엇을 줄 것인지, 언제 시작할 것인지 나는 다 정해 두었다.
하지만 이곳은 준비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한 사람은 자기가 정한 것을 꺼내 놓는다. 기다리는 사람은 누가 올지 모르는 채로 자리를 비워 둔다. 그래서 준비한 사람에게는 예상 밖의 일이 방해가 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곧 만남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빈 운동장은 부족한 공간이 아니었다. 곧 아이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 고요는 함성으로 채워질 것이다. 운동장의 골대는 그 사실을 알고 그냥 서 있었다. 하늘 아래 운동장을 바라보며 나는 나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를 채우러 왔는가?' 아니면 '이미 여기 있던 삶을 만나러 왔는가?'
해가 낮아진 시간, 세 사람이 나란히 섰다. 역광이라 얼굴도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옷의 색과 무늬도 어둠 속에 희미하게 남았다. 그런데 얼굴보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왼쪽 사람의 팔이 가운데 사람의 어깨로 이어지고, 오른쪽 사람의 팔도 가운데를 향한다. 세 사람의 몸은 나뉘어 있지만, 팔과 어깨는 하나의 선이 되었다. 얼굴은 가려졌는데 관계는 가려지지 않았다. 누가 성직자이고 누가 봉사자인지, 누가 더 많은 바카라임을 졌는지 이 사진으로는 알 수 없다. 남은 것은 세 사람이 서로에게 놓은 손뿐이다.
떠나올 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맡은 역할, 준비한 물품, 진행할 일정이 중요했다. 나눔이란 내가 가진 것을 건네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길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했고, 말을 옮겨 주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판단이 흔들릴 때 곁에 있어 준 동료가 있어야 했다. 그들은 같은 빛을 받고 선 사람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빛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빛 앞에 함께 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는 것은 그 짐을 혼자 지게 두지는 않겠다는 몸의 약속에 가깝다.
낯선 땅에 닿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곳을 안다고 믿고 있었다. 결핍을 상상했고, 부족함을 예상했고,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주러 간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오기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에도, 어른들의 눈빛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흐르던 리듬이 있었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 잠시 끼어든 손님이었을 뿐이다. 사진을 통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다시 바라본다. 셔터를 누르던 순간에는 미처 읽지 못했던 표정들을, 이제야, 한 박자 늦게 마음으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