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마른 체질이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몸에는 무언가를 붙들어 매어둘 여백이 없었다. 옷을 입어도 허술해 보이는 몸이 싫어서, 나는 살이 보드랍게 붙은 이들을 남모르게 부러워했다. 풍요로움은 저렇게 둥글고 넉넉한 모습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대지에 든든한 무게를 남기며 걷는 이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만한 존재감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늘 생각지도 못한 길목에서 미끄러진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우울증은 마음의 방을 어둠으로 채우더니, 이내 몸의 질서마저 무너뜨렸다. 마음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삼키기 시작한 알약들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살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것은 건강한 풍요가 아니었다. 통제력을 잃고 불어나는 몸은, 마음의 빈자리가 몸의 무게가 되어 나타난 듯했다. 몸이 무거워질수록 영혼은 더 깊이 가라앉았고, 불어난 체중은 고스란히 당뇨라는 불청객을 데려왔다. 거울 속에는 내가 알던 나의 온전한 모습 대신, 낯설고 비대해진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
한 달 전, 나는 비로소 결단했다. 이대로 무너져 내리는 육체를 방관할 수는 없었기에 다이어트의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문을 열고 한 걸음만 밖으로 나가도 세상은 거대한 유혹의 시장이었다. 세상은 온통 탄수화물과 설탕, 그리고 지방의 버무림으로 가득했다. 골목마다 풍겨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강렬한 단맛들이 끊임없이 손을 내밀며 속삭였다. 이것을 먹고 행복해지라고 말이다.
외식이라도 하려 하면 매 순간이 조심스러운 수행이 된다. 식당에 앉아 남들과 마주할 때도 내 몫으로 나온 하얀 쌀밥의 절반을 먼저 덜어내는 일부터 시작한다. 조금 더 먹어도 괜찮다는 속삭임이 들려오지만, 나는 그 유혹을 간신히 내려놓는다. 현재 나의 저녁 식탁은 지독하리만큼 단조롭다. 잘 삶아진 계란 두어 개, 퍽퍽한 닭가슴살, 거칠고 아삭한 양배추와 당근, 그리고 올리브 오일 몇 방울이 전부다. 남들이 보면 초라하다고 할 이 식단이 지금은 내 몸을 지키는 가장 정직한 방패다.
그렇게 한 달을 버텨냈다. 체중계는 정확히 5킬로그램이 줄었다. 숫자는 작았지만 내게는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증거였다. 내 몸을 짓누르던 오랜 습관의 무게가 그만큼 덜어진 것이었다.
다이어트를 이어가며 나는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여덟 시간만 먹고, 나머지 열여섯 시간은 철저히 비워두는 간헐적 단식을 몸에 새기고 있다. 처음에는 시곗바늘을 바라보는 일이 고역이었으나, 이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몸의 원리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 하루 세끼를 규칙적으로 배불리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득한 수렵 채집 시기의 조상들에게 굶주림과 공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상 상태였다. 인간의 몸은 원래 굶주림과 더 오래 살아온 존재였다.
공복이 길어지면 몸은 안에서 조용히 자신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듯했다. 예전처럼 늘 무겁던 속이 어느 순간 가벼워졌고, 머리도 맑아졌다. 맑아진 정신으로 서재에 앉아 글을 쓰거나, 집 근처 소래산 자락을 따라 오래 걸을 때면 왠지 모르게 내 몸을 지극히 아끼고 대접하고 있다는 깊은 충만감이 밀려온다. 나는 대접이란 더 많이 채우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진정한 대접은 과잉을 덜어내고 본래의 결을 찾아주는 데 있었다. 내 몸에 쉴 시간을 주고 스스로 정화할 기회를 주는 이 과정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배가 알싸하게 고파올 때, 비로소 나는 진정한 맛과 마주한다. 저녁 식탁에 앉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양배추 한 조각, 당근 한 토막을 입에 넣고 오래도록 씹는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채소 고유의 단맛과 땅의 향기가 입안 가득 번진다. 밥 반 공기를 조심스럽게 떠서 입에 넣을 때, 그 쌀알 하나하나가 머금은 햇살과 바람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 숟가락의 음식을 마주하며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고마움과 감사함. 이것은 배가 터지도록 차려진 식탁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귀한 감정이다. 결핍을 통과하지 않은 풍요는 감각을 마비시키지만, 스스로 선택한 결핍은 아주 작은 존재마저 축복으로 둔갑시킨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결핍이라는 배경을 두고 피어났다. 은퇴 후 다시 펜을 든 일 또한 내 안의 어떠한 결핍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던가. 마음의 상처,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 지나간 기억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결핍들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펜을 들었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흰 바탕 위에 한 자 한 자 마음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 만약 내 삶이 아무런 굴곡 없이 풍요롭기만 했다면, 나는 단 한 줄의 수필도 쓰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울증과 비만, 그리고 당뇨라는 육체의 시련은 분명 고통스러운 결핍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터널을 통과하며 나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건강한 방식으로 내 몸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5킬로그램의 무게를 덜어내며 가벼워진 것은 비단 육체뿐만이 아니다. 내 삶을 둘러싸고 있던 허영과 지나친 욕심이 함께 씻겨 내려간 기분이다.
결핍은 나를 무너뜨리러 온 것이 아니었다.
결핍은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선명하게 바라보게 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배고픔 끝에서 마주한 한 숟가락의 밥은 그 어느 날의 진수성찬보다 깊은 감사를 품게 한다. 어쩌면 그것이 결핍을 견딘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가장 아름다운 보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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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바카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