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가 지워진 자리에 눈이 내린다
구겨진 캔 속에서 마르던 비명들이
라벨이 벗겨진 빈 몸들 사이로 스며들 때
벨트가 구를 때마다 둔탁한 쇳가루 냄새가 번진다
누구의 입술이 다녀간 흔적일까
찌그러진 나를 밀어 넣으며
닳아버린 생의 규격들을 생각한다
한때 단단한 문장이었던 겉표지들과
누군가의 갈증을 오래 품었던 병들
쓰임을 다했다는 것은
끝났다는 말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자리를 비워 두는 일
컨베이어의 무거운 진동 위에서
어제의 무늬들이 일제히 녹아내린다
통증을 기억하는 형상들이 불빛 같은 액체로 흘러내릴 때
뼈를 바꾸는 환골은
생각보다 조용한 일이었다
부서지는 소리는 오래도록 몸속에 울렸다
용광로의 푸른 불꽃을 지나온 것들은
새로운 몸을 빚어내며 다시 태어난다
첫 행에 내리던 차가운 눈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 번 버려진 것들만이 아는
두 번째 삶은 처음보다 더 투명하다
끝은 언제나 다른 시작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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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