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는 계절

by선비천사

계절이 오면 우리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낡은 허물을 벗어던질 때,

나뭇잎 뒤에서 퍼지는 초록의 울음소리.


말씀이 고이던 태초에도

아이는 나무 아래 서서

첫울음을 기다렸을 것이다.


매미는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데

그 울음만은 거대하여

먼지 쌓인 도시의 뼈대를 흔들고

땀 흘리는 여름 한 철을 통째로 깨운다.


그 작은 몸 어디에

여름 하나가 온전히 숨어 있었을까.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올라 골목 끝까지 번지는,

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서늘하게 쓸어내린다.

베란다 창문에 부딪혀

오후의 햇빛 속으로 흩어지는 저 소리들.


우리는 자꾸만 삶에 금을 긋고 싶어 한다.

멈춰 선 신호등 아래

헛도는 바퀴 하나.


우리는 제 몸을 가둔

이 얇은 허물들을 깨뜨리고 싶은 것이다.

갈라진 껍질 속에서 젖은 날개를 펴듯

삶이 또 다른 허물을 씌워도,

기어이 다시 벗어던지며.


울지 않는 매미가 어디 있으랴.

아무도 듣지 않는 목소리는 있을지언정,

네 마음에 닿지 못해

뙤약볕 아래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우는 것을.


소리는 이 땅 가장 높은 곳에 걸려

마지막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다.


누구도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 시대,

태풍이 휩쓸고 간 쓸쓸한 고요 속에서

매미는 비로소 울음을 그치고

다만 가만히, 눈을 뜨는 것이다.




*같이 보면 좋은 글

쓰레기 소고(小考)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

� 작가 방철호의 블로그 방문하기

[전자바카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식탁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