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위에 핀 꽃

by선비천사

내 나이 서른둘, 삶의 푸르름이 한창이던 시절에 한 여인을 만났다. 종교심이 깊고 맑았던 그녀를 통해 나는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배웠다. 때로는 그 지극한 사랑이 집착과 서운함으로 변해 서로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사랑은 기쁨만이 아니라 상처까지 함께 품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결혼 초반, 우리의 나날은 바랄 것 없이 넉넉했다. 하늘이 보내준 선물 같은 아들과 딸이 차례로 품에 안겼다. 교정의 칠판 앞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나에게 방학은 해방의 계절이자 축제였다. 방학 종소리가 울리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길을 떠났다. 산과 바다, 낯선 길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나는 그 평범한 일상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그 평온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 오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생(生)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어둠이 찾아왔다. 내 영혼은 보이지 않는 늪 속으로 조금씩 가라앉았고, 나는 이유 없는 무력감에 허덕였다. 내가 그 무력함 속에서 헤매는 동안, 아내는 '폐 유육종'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면서도 군말 없이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비극은 예고도 없이 들이쳤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뇌출혈로 아내가 쓰러진 것이다. 차가운 중환자실의 흰 침대 위에서 아내는 한 달 동안 위태로운 사투를 벌였다. 면회실 문밖에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기적을 바라던 그 한 달 동안, 내 안의 우울증과 눈앞의 잔인한 현실이 뒤엉켜 나는 철저히 무력했다.


결국 한 달 만에 마지막으로 잡았던 아내의 손에는 더 이상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삐- 소리가 길게 울리는 병실 창밖으로 무심한 불빛만 깜빡였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일부인 장기를 세상에 기증한다는 서류 한 장을 남긴 채 그렇게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타인에게 새 생명의 빛을 나누어 준 퇴장이었지만, 남겨진 자의 가슴에 얹힌 사별의 무게는 고스란히 남았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서늘한 정적과, 아직 세상의 풍파를 알지 못하는 어린 남매뿐이었다.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칠판 앞에서는 엄격하고 다정한 교사여야 했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엄마의 역할까지 해내야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의 아침을 챙기고 서둘러 출근길에 올랐다. 퇴근 후에는 살림을 돌보고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었다. 칠판 앞에 서서 분필 가루를 털어낼 때마다, 하얗게 떨어지는 그 가루를 보며 칠판 앞에 서 있던 내 청춘이 먼저 지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밥을 먹다가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으면 아이들이 볼까 봐 화장실로 달려가 세숫물을 틀어놓고 소리 죽여 울었다.


하루를 견디는 데만 온 마음을 쓰다 보니 어느새 십여 년이 흘러 있었다. 거울 속에는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고 머리숱이 희끗해진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아이들은 그 모진 시간을 버텨내고 저마다의 몫을 하는 성인으로 자라나 주었다. 비로소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내 가슴속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황량한 구멍 속으로 조용하고 슬기로운 한 여인이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오래 머무는 온기로 내 거친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 역시 삶의 굴곡을 아는 사람이었다. 내 상처를 캐묻지 않았고, 말보다 긴 침묵으로 곁을 지켜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등대 삼아 조심스럽게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재혼을 두고 두 번째 행복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이것은 ‘상처 위에 핀 꽃’이다. 거름진 흙이 아니라, 상처로 메마른 땅 위에 피어난 꽃이다. 그래서 지금의 평온은 젊은 날의 희열처럼 마냥 달콤하거나 들떠있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차분하고 단단하다.


이제 우리는 거창한 꿈을 꾸지 않는다. 아침이면 그녀가 건네는 향긋한 커피 한 잔에 미소 짓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 하나를 둘이 나눠 쓰고 어깨를 맞춘 채 걸어간다.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서로의 수저 위에 반찬을 얹어주는 사소한 몸짓들, 해 질 녘이면 소래산 자락을 나란히 걸어 오르는 일상. 서로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추며 살아가는 이 평범한 장면들이야말로 내 생애 가장 눈물겨운 축복임을 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들을 향한 미안함이 오래된 흉터처럼 남아 있다. 어느새 다 커서 제 길을 가고 있는 아들과 딸이지만, 엄마의 부재 속에서 가장 민감한 시절을 보내야 했던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매번 뜨거운 국물을 삼키듯 목구멍 뒤로 넘어간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제 다 안다는 듯, 오히려 나의 새로운 출발을 묵묵히 응원해 준다. 그 깊은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아프다.


베란다 창가에 서서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먹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을 붉은 노을빛이 따스하게 감싸 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 지나온 발자취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다. 격정적이었던 첫사랑과 상실의 고통, 그리고 홀로 버텨낸 황량한 겨울을 지나 지금의 평온에 이르기까지, 내 삶은 언제나 극적인 명암의 연속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새로운 인연을 맺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비록 그 길 끝에 지독한 슬픔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 슬픔의 깊이만큼 찬란했던 기쁨의 순간들이 내 존재를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슬픔과 기쁨은 한 생을 이루는 같은 숨결이었다.


남은 생도 이 삶의 결을 따라 조용히 걸어가려 한다. 이제 나는 안다. 꽃은 상처가 아문 자리에서 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살아낸 자리에서 핀다는 것을. 저녁노을이 물든 창가에서, 오늘도 나는 그 꽃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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