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소고(小考)

by선비천사

유통기한과 바코드가 증발한 자리,

용도가 곧 목숨이었던 것들이

가장 먼저 국적을 잃는다.

쓸모를 다한 몸들이 흰 비닐 속으로 구겨질 때

누구도 그 안의 썩어가는 침묵을 계산하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피어나는 꽃들을 찬양하며

그 눈부신 생의 안부를 물어올 때,

이름을 잃은 것들은 철저히 외면당해 마땅하다는 듯 골목의 가장 눈먼 모퉁이로 밀려난다.


발음할 때마다 입술이 먼저 밀어내는 이름,

지워지는 순간에도 제 장례를 스스로 치러야 하는 이름.

묶여서 단단해지는 매듭의 아귀 속에서

빛을 잃은 빈 구멍들이 서로의 찌그러진 어깨를 기댄다.

여기는 흉터들이 모여 서로의 이름을 버리는 곳.


모두가 나를 딛고 저 앞의 불빛으로 달아날 때

터질 듯 팽팽해진 옆구리로

비로소 검게 식은 숨을 내쉬는 나의 동거인들.

외면받음으로써 완성되는 존재들이 골목에 가득하다.


새벽의 차가운 철판이 밤의 침을 삼키면

압축기 속으로 하루의 뼈를 접어 넣는 시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가난한 만찬을 싣고

차가운 바퀴가 버려진 이름들의 무게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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