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조금씩 젊어지고 있다

by선비천사

새벽 대야동의 공기는 늘 차갑다. 베란다 창문을 열면 소래산 자락이 묵묵히 서 있다. 거울 앞에 서서 듬성해진 흰머리를 쓸어 넘기고 돋보기를 코끝에 걸쳤다. 은퇴 후 내 아침을 여는 소리 없는 의례다. 주민등록등본에 박힌 숫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몸은 조금씩 아래로 처진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조금 이상하다. 자꾸 어린아이가 된다. 나는 요즘 조금씩 젊어지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내 청춘은 지독하게도 늙어 있었다. 늘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라는 계절을 저당 잡히며 살았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마음에는 어느새 굳은살이 박였다. 푸른 나이였지만 정작 푸르름을 누릴 줄은 몰랐다. 무겁고 둔한 청춘이었다.


그 삶의 짐을 내려놓고서야 내 안의 시간이 조금씩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시작은 서투름을 숨기지 않으면서부터였다.


은퇴 후 처음 워드프레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우스를 잘못 눌러 공들여 쓴 문장이 사라질까 봐 손끝이 괜히 긴장됐다. 아들에게 "이 화면에서는 어디를 눌러야 저장되냐?" 하고 묻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신입생이었다.


예전 같으면 애써 아는 척했을 것이다. 이제는 모르면 묻는다. 모른다고 말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 그 한마디를 꺼낼 때마다 내 안으로 낯선 바람 하나가 들어온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소래산 자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젊은 날의 산행은 늘 정상을 향한 경쟁이었다. 빨리 오르는 것이 중요했고, 쉬어 가는 일은 게으름이라 여겼다.


그날은 바위 틈에 겨우 뿌리를 붙인 작은 이끼가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저 자리에 있었을까. 그 작은 초록은 말없이 제 시간을 살아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투자 화면을 열었다. 빨갛고 파랗게 출렁이는 숫자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예전 같으면 그 파도에 휩쓸려 조급하게 마우스를 딸깍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한참 동안 마우스를 쥔 채 아무것도 누르지 못했다. 결국 그날도 매매 단추를 누르지 않고 조용히 화면을 닫았다.


조바심을 내려놓은 자리로 창밖의 저녁노을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괜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였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고요했다.


언제부터인가 잘하는 일보다 처음 해보는 일이 더 많아졌다. 실수도 늘었고, 모르는 것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는 전보다 더 재미있다. 내일은 또 무엇을 배우게 될지 궁금해진다.


거울 속의 주름은 또 하나 늘어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일 아침 베란다 문을 열면,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서툴고, 조금 더 푸른 아이가 되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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