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11월은 잔인하다. 온 나라의 출근 시간이 한 시간 늦춰지고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는 이 기묘한 날은, 현대 자본주의 슬롯에서 합법적으로 신분을 세습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관문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서울 서초구의 제23시험장, 감독관 경력 15년 차의 교사 박종수는 교실 뒤편에 서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수능 부정행위 잔혹사의 연표가 스쳐 지나갔다. 스마트폰을 숨겨오던 시절을 지나,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으로 텍스트를 읽어내던 AI 스마트 렌즈의 시대까지는 어떻게든 규격화된 장비로 걸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실시간으로 인공지능과 뉴런을 동기화하는 생체 매립형 두뇌 칩, 일명 ‘뉴로링크-X’가 상용화된 첫해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며 교실마다 최첨단 ‘뇌파 동조 전자기장 스캐너’와 전자기파 차단기를 설치했지만, 박종수는 그것이 거대한 눈속임임을 알고 있었다. 유명 학군 출신의 자산가들은 위성 네트워크가 차단될 것에 대비해, 이미 올해 모의고사 데이터와 수능 예측 알고리즘 전체를 칩의 하드웨어에 로컬 데이터로 통째로 내장하는 ‘오프라인 암기형 칩’ 시술에 수억 원을 아끼지 않았으니까. 기술의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잡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오전 8시 10분, 3학년 2반 교실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1교시 국어 영역이 시작되었다. 박종수의 눈길은 맨 앞자리에 앉은 이민준에게 머물렀다. 민준은 원래도 전교 상위 1%를 유지하던 수재였으나, 완벽을 기하기 위해 칩을 심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민준의 관자놀이에는 미세한 함몰 흔적이 있었다. 뇌파 스캐너를 들이댔을 때 민준은 합법적인 ‘ADHD 치료용 내장 장치’라는 교육부 허가서를 내밀었고, 박종수는 내심 혀를 찼다. 본령이 울리자 교실 안은 시험지를 넘기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민준의 옆자리에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인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소년이 거칠게 연필을 굴릴 때마다 바카라상 위로 지우개 가루가 수북이 쌓여갔다. 반면, 민준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뇌 속 시각 피질에 직접 투사된 AI 가이드는 0.003초 만에 킬러 문항의 논리적 오류를 추출해 정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민준의 손은 그저 뇌가 내린 연산 명령을 수행하는 프린터 출력 노즐에 불과했다. 지문을 읽지도 않고 거침없이 답을 찍어내리는 기계적인 마킹. 박종수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속에서 서늘한 적개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우개 가루를 털어내며 묵묵히 버티는 옆자리 아이의 땀방울이, 저 실리콘 칩 한 조각 앞에서 조롱당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박종수는 슬그머니 양복 주머니 안의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교육부 지침을 명백히 위반한, 학생의 신체에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검증되지 않은 규격 밖의 저주파 노이즈 발생기였다. 선의라는 명목 아래 위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이 스쳤으나, 그는 이미 멈출 수 없었다.
2교시 수학 영역이 시작되자 민준의 눈빛은 한층 더 여유로워졌다. 복잡한 미적분 기하학 문제도 칩의 연산 장치를 거치면 단 몇 밀리초 만에 수식의 해가 도출되었다. 최고 난이도의 22번 주관식 문제 앞에서도 민준의 눈앞에는 그래프가 3D로 렌더링 되며 정답 ‘128’이 떠올랐다. 바로 그때, 박종수가 천천히 걸어와 민준의 바카라상 옆에 멈춰 섰다. 그리고 주머니 속의 수제 발생기를 민준의 관자놀이와 불과 30cm 떨어진 바카라상 모퉁이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 순간, 프리미엄 칩의 회로가 규격 외의 무차별적인 저주파 노이즈를 직격으로 맞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시각 피질의 레이어가 지지직거리며 왜곡되더니, 과열된 시스템이 방어 기전으로 강제 재부팅에 들어갔다. 시야가 먹물처럼 가라앉으며 AI가 꺼져버렸다. 급격한 링크 단절로 이명과 함께 지독한 멀미가 밀려오자 민준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순간적으로 계산 속도가 1000분의 1로 뚝 떨어지며, 뇌 속을 지배하던 정연한 수식들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칩이 멈추자, 민준은 어디까지가 자신의 기억이고 어디부터가 칩의 기억이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선생님...! 머리가, 머리가 너무 아파요! 이거 치워주세요! 분명히 아는 공식인데... 기억이 안 나요!” 민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신음하자, 박종수는 인자하면서도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민준 수험생, 시험에 집중하렴. 이거? 내 허리가 안 좋아서 붙이는 의료용 자석 치료기란다. 수학 문제는 원래 자기 뇌 속에 있는 지식과 손으로 푸는 거란다.” 민준은 답안지와 자신의 떨리는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몰려오는 혼란 속에서 평범한 사칙연산조차 의심해야 하는 무능한 상태로 추락한 민준은 거칠게 연필을 굴리기 시작했다. 반면, 그 옆자리에서 밤새도록 기출문제를 피땀 흘려 풀었던 남학생은 박종수의 방해 공작 따위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세 자루째 닳아가는 연필로 묵묵히 서걱서걱 자신만의 수식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박종수는 마침내 정의가 실현되는 듯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교실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콩트의 진짜 신은 인간의 오만한 설계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비웃는 법이다. 오후 5시, 마침내 수능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박종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안지를 수거해 교무실로 향했다. 제 손으로 공정함을 지켜냈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채점 본부로부터 가답안이 밀봉되어 내려왔고, 박종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3학년 2반 아이들의 가채점 표를 슬쩍 확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수학 22번 주관식 문항이었다. 가답안을 확인한 박종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답은 1이었다. 다급하게 해설지를 펼친 박종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올해 출제위원들은 기출 패턴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대형 학원의 시스템과 인공지능 칩을 통틀어 저격하기 위해 역대급 함정 문항을 설계해 두었던 것이다. 기존의 모든 논리와 사설 학원의 만점 공식을 그대로 대입하면 무조건 정답이 ‘128’로 수렴되도록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논리적 비틀기를 숨겨놓아 패턴 암기형 학습자는 전부 오답인 ‘128’을 도출하도록 유도된 문제였다. 시스템을 겨눈 함정은 결국 사람부터 삼켰다. 민준의 AI 칩이 정상 작동했다면 칩 역시 그 정교한 패턴 함정에 걸려들어 오답인 ‘128’을 뱉었을 터였다. 하지만 박종수가 갖다 댄 노이즈 발생기 때문에 칩이 터져버린 민준이, 극심한 두통과 공포 속에서 울부짖으며 연필을 굴려 찍은 단 한 자리 숫자가 하필이면 ‘1’이었다. 반면 박종수가 그토록 흐뭇하게 바라보았던, 옆자리에서 지우개 가루를 쌓아가며 밤새 피땀 흘려 정석을 파고들었던 남학생의 답안지에는, 빽빽한 수식 끝에 너무나 성실하게 도출된 오답 ‘128’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박종수가 교무실 의자에 주저앉아 등줄기에 서늘한 죄바카라감을 느끼고 있을 때, 교무실 벽면에 걸린 TV 화면에서 교육부의 긴급 브리핑이 흘러나왔다. 환하게 웃는 교육부 대변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수능은 첨단 기술을 동원한 그 어떤 부정행위 시도도 완벽히 차단하였으며, 역사상 가장 공정한 시험이었음을 입증했습니다.” 화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박종수는 주머니 속에서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불법 노이즈 발생기를 만지작거리다 끝내 꺼내지 못했다. 창밖으로 11월의 잔인한 노을이 번져가고 있었다. 교문 앞에는 아들의 수석을 직감한 부모가 최고급 세단의 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민준을 맞이하고 있었고, 민준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박종수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고3인 그의 아들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아빠, 나 이번에 수학 22번 진짜 열심히 풀었는데 틀렸어. 강남 애들도 학원 애들도 다 틀렸대. 그냥 다 찍은 애가 맞았다는데 허탈하다. 나 재수할 때는 그냥 뇌에 칩 심어줘.’
박종수는 끝내 아들의 문자에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정답은 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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