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여백

by선비천사

여름이 쥐고 있던 볕의 무게가

조용히 손을 놓는다


그늘이 조금씩 넓어지는 마당,

바람은 볕 걷힌 자리를 지나

낮게 맴돌고


귀뚜라미 한 마리

어둠의 틈에 토막 난 소리를

툭, 툭 털어 넣는다


높은 아파트 베란다 너머

몸을 넓혀 널린 홑이불 하나,


건너온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의 층계를 하나씩 내려선다


넓어지는 그늘 아래

넝쿨을 풀고 내려앉은 호박,


공중에 가만히 바늘을 세운 잠자리가

그 묵직한 조용함 위에


점 하나를 찍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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